본관은 인주(仁州)이며 초명은 이응의(李應誼)이다.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이자연(李子淵)의 증손이며, 이식(李軾)의 아들이다.
어려서 문과에 급제하여 직문하성(直門下省)이 되었고, 왕의 뜻에 맞는 의견을 자주 올렸다.
1190년(명종 20)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고, 이듬해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가 되었다. 문벌귀족가문에서 성장하였으나 교만하지 아니하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무신정변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만년에 천첩을 얻어 가도를 문란하게 하였고, 죽은 뒤에는 자손간에 재산을 둘러싼 송사가 계속되었으므로 비난을 받았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