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학철(學喆). 함경북도 북청 출신. 1929년 경신고등보통학교 재학시 동맹휴학을 주도하는 등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퇴학당하였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하게 되었다.
일본 유학시절에 재대판 조선유학생(在大阪朝鮮留學生) 웅변대회에서 일제의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식민통치책을 신랄히 성토, 규탄함과 동시에 격양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웅변대회장에 참석한 일본인 학생 수십 명을 발길로 걷어차 퇴학당하고 말았다.
1932년 적극적으로 독립운동 대열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해(上海)로 건너가 격렬한 민족지도자의 독립운동 조직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였다. 1933년에는 유자명(柳子明) 등이 조직한 무장항일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 제11기생으로 입교하여 1936년 10월 제1총대(第一總隊) 보병과를 졸업한 뒤 초급장교로 임관, 실전배치를 위한 제반 실무교육을 받았다. 그 뒤 중국군 보병 상위(上尉)로 진급, 중국군 제6사단 제17여단 제30단 제2영6연장(第二營六連長)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 일제가 중국본토를 침공하자, 이에 참전하였다가 경호전역(京滬戰役) 때 일본군에 잡혀 1938년 3월 군법회의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순국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