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단천 출신. 1919년 만주 장백현에서 약 200여 명의 단원을 모아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 단장에 취임하여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음력 10월 최종훈(崔鍾勳)을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에 파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독립군비단의 활동을 알리는 선전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또한 국내의 정황을 조사하기 위해 1921년 함경남도 풍산(豊山), 이원(利原) 등지에 통신지국(通信支局)을 설치하였다. 1921년 2월 경 만주 장백현 내의 독립운동 단체의 연합 통일을 추진하였고 그 연합회의 임시회장에 추대되었다.
한편, 이희삼은 이동백과 함께 1921년 러시아령 자유시에서 발생한 흑하사변(黑河事變)에 대하여 러시아에 있던 공산당계 독립단, 무시(武市) 국민회의, 고려혁명군정의회(高麗革命軍政議會) 등을 신랄히 비판하는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1921년 9월 군비단 대표 이희삼, 윤덕보(尹德甫)의 명의로 흑하사변과 일제 타도를 내용으로 하는 ‘성토문’을 발표하여 독립운동계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