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1월 정지공사 중 발견되어 전영래(全榮來)에 의해 조사되었다.
지표 아래 약 1m 지점에서 화강암을 장방형으로 자른 1매의 개석이 드러났다. 길이는 남변이 2.37m, 북변이 1.98m, 너비는 서변이 0.84m, 동변이 1.0m에 이르며, 두께는 16∼19㎝이다.
조사 때에 석실은 이미 파괴되었으나 10㎝ 내외의 두께를 가진 화강암 할석을 몇 단씩 쌓아올린 장축 동서방향이 장방형석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석실은 길이 1.8m이며 너비와 깊이는 모두 60㎝ 내외이다.
석실 바닥에서는 서벽 가까이에서 동경(銅鏡) · 구슬류가 나왔고 토기는 반대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서침장(西枕葬)이었던 것 같다. 유물은 동경 1점, 동포(銅泡) 2점, 청동제 원형식판(圓形飾板) 파편 1점, 청옥류(靑玉類) 110개, 이 밖에 흑도무문토기(黑陶無文土器)의 파편이 있었다.
동경은 다뉴조문경(多鈕粗文鏡)으로서 지름은 10.7㎝로 한쪽 주연(周緣)에 치우쳐 2개의 꼭지가 붙어 있고, 주연은 단면 3각형의 가는 돌대(突帶)이다. 문양의 형식은 평안북도 맹산 출토 납석제 거푸집과 김동현(金東鉉)이 소장하고 있는 동경과 유사한 횡렬대 문양이다. 맹산의 경범(鏡范)은 단구(單區)로서 다송리의 동경보다는 선행형식이다.
동포는 지름 9㎝의 삿갓모양으로 안쪽 중심부에 1개의 꼭지를 붙였는데, 경주 입실리 출토품과 매우 비슷하다. 청옥류는 길이 0.6∼1.3㎝, 지름 0.4㎝ 정도의 관옥이 93개, 나머지는 지름 0.45∼0.85㎝, 길이는 0.3∼0.7㎝ 정도의 편옥(扁玉)이다. 이들은 1벌로 용도는 목걸이였던 것 같다.
이 고분은 그 형식이나 출토품이 부여 연화리나 대전 괴정동 유적과 같은 유형에 속한다. 일괄유물로 보면,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초로 추측되나, 다뉴경만은 그보다 앞선 서기전 3세기 후반경으로 소급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