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현지 주민에 의해 동검 · 동과(銅戈) · 동끌[銅鑿] · 동사(銅鉈) 등이 발견되어 현재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1967년 김원룡(金元龍)이 유적을 조사하였다.
유적은 금마면 서남방 약 4㎞ 떨어진 구릉지대 남사면의 밭에 위치해 있다. 유적은 지하 약 30㎝ 깊이에 묻혀 있었다. 다른 유구(遺構)는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보아 움무덤[土壙墓]에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토된 유물은 동검 · 동과 · 동사 · 동끌 각 1점씩으로 동끌만 완전하고 나머지는 모두 파손된 부분품이었다. 부근에는 모래가 섞인 두께 0.9㎝의 연질 민무늬토기편이 흩어져 있었다.
동검은 길이 8.8㎝ 정도의 검 끝부분으로 단면은 납작마름모꼴로 등대나 피홈[血溝]이 없다. 이것은 검 끝이 긴 세형동검의 부러진 조각으로 보인다.
동과는 뿌리 가까운 부분만 남은 것으로서 슴베는 방형으로 길이 4.0㎝, 너비 3.0㎝, 두께 0.8㎝, 관부(關部) 길이 7.0㎝로 비교적 작은 편이다. 몸체에는 너비 1.4㎝, 두께 1.1㎝의 둥근 등대가 있다. 등대 양쪽에는 홈이 있는데 뿌리 가까이에 각각 지름 1㎝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표면은 검푸른 녹막이 덮여 있다.
동사는 한쪽면 중앙에 좁은 등대가 서있고 양날이 있는 ‘나이프’형 동기로 현재 길이 2.6㎝ 정도만 남아 있다. 너비 1.8㎝, 두께 0.35㎝이다. 단면을 보면 약간 안으로 굽어 바깥쪽 중앙에 단면 삼각형의 가는 등대가 세워졌다. 표면에는 검은 광택이 돌고 있다.
동끌은 자루 구멍이 있고 한쪽 날을 세운 가는 형태이다. 길이는 9.9㎝이고 날의 너비는 1.1㎝이다. 몸체의 단면은 육각형이고 각 면은 약간씩 안으로 굽었다. 자루 구멍의 바깥에는 도드라진 띠를 둘렀다. 구멍 크기는 1.0㎝×0.8㎝의 네모꼴이고 길이는 4.9㎝이다.
이 지방에서 이러한 일괄유물의 출토 예는 희귀하며 그 예는 황해도 봉산군 송산리의 배석묘(配石墓)에 있었다. 그러나 동끌이 동검 등과 함께 묻혔던 예는 대전 탄방동, 아산 남성리 등 충청남도지방에서 볼 수 있다.
동끌 · 동사 등은 중국 전국시대 유물에서 그 계통을 구할 수 있다. 동검 · 동과 등은 한반도에서 정형화된 독특한 형식으로서 여기에 새로이 중국계 요소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까운 곳에서 출토된 오금산 유물과는 달리, 이 지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작연대는 서기전 3세기 말∼2세기 전반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