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은 금강 남안인 웅포면 소재지의 동편 약 1.5㎞ 떨어진 함라산의 서쪽 능선상 높이 40∼80m에 걸쳐 약 60기가 군집한다.
그 중 15기가 1987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원광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고분은 거의 도굴로 파괴되었으나 돌방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① 제1유형 구덩식 돌방무덤: 잡석으로 네 벽을 쌓고 안장 후 개석(蓋石)을 덮는 형식으로서 제4 · 7 · 8 · 11 · 12호의 5기가 이에 해당한다.
장방형 평면이며 측벽은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위로 올라가면서 안기울임해 단면 사다리꼴을 이룬다. 가장 규모가 큰 제7호는 길이 3.4m, 너비 1.1 m이며 가장 작은 것은 제11호로서 길이 1.9m, 너비 55㎝이다.
유물은 제7호에서 뚜껑달린 굽단지 4점, 작은 굽단지 1점, 삼족개배(三足蓋杯) 1점, 곧은입항아리[直口壺]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제7 · 8호에서는 모두 철부(鐵斧) · 겸신(鎌身) · 도자(刀子) 등 철제품이 각 1점씩 수습되었다.
② 제2유형 앞트기식 돌방무덤: 규모나 축조방법에 있어 제1유형과 비슷하나 세 벽을 먼저 쌓고 개석을 덮은 시설을 하고 뚫린 한 면에서 매장주체를 밀어넣은 다음 입구를 막돌로 마구리한 형식으로, 제1 · 6 · 9 · 13호가 이에 해당한다.
역시 파괴가 심하나 규모는 제1호가 길이 2m, 너비 75㎝, 제6호가 길이 2.28m, 너비 55∼75㎝이다. 유물은 거의 도굴되고, 제9호에서 뚜껑 1점, 제13호에서 개배 1점이 수습되었다.
③ 제3유형 굴식 돌방무덤: 우측 장벽에 연해 널길[羨道]을 부설한 형식으로 3기가 조사되었다. 돌방의 평면형은 제20호처럼 거의 정방형과 제2 · 10호분처럼 장방형이 있다.
제20호는 길이 2.68m, 너비 2.53m이며, 널길은 너비 90㎝, 길이 1.5m이다. 제10호는 길이 2.4m, 너비 1.38m, 널길은 너비 62㎝, 길이 50㎝가 남아 있다. 벽석 상부가 모두 파괴되었으나 부근 익산 입점리(笠店里)고분 돌방의 유형과 같이 궁륭상천장으로 벽면은 안기울임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물은 제20호에서 직구호 3점, 짧은목항아리 1점, 뚜껑 6점, 개배 1점, 제10호에서 광구호(廣口壺) 1점, 개배 1점, 제2호에서 삼족토기 3점, 권족배 1점, 세경호 1점, 가락바퀴 1점 등이 나왔다. 백제 중기의 금강유역 묘제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