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후 일제하에서 대한제국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因山 : 조선 때 태상황, 태상황후부터 왕세손, 왕세손빈까지의 장례를 이르는 말)에 닥쳐 광무황제를 애도(哀悼)한 조애가사(弔哀歌辭)이다.
이 노래는 “가ᄌᆞ셔라 가ᄌᆞ셔라/인산통곡 가ᄌᆞ셔라/오홉도다 우리 황샹/만리 ᄒᆡᆼᄎᆞ 왼 일고”로 시작된다.
이어서, “갑ᄌᆞ년 등극초에/젼졍이 만리시고/츈츄가 십삼셰로/쳔안이 단졍ᄒᆞ시고/신민네 부모시라.”라고 하여 광무황제의 등극초 신민들의 기대가 컸음을 밝히고 있다.
또, “동대문을 바로 ᄂᆞ와/죵노 대로 통한 길에/오홉도다. 만셰 현군/금곡(金谷)으로 향ᄒᆞ신지.”라고 읊은 데에서는 광무황제의 인산을 슬퍼한 작품임을 더욱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작자는 중국고사를 인용하면서 구구절절이 부모 잃은 백성의 안타까움을 읊고 있다.
“경복궁 놉흔 집은/금슈(禽獸)가 노나니라. /죠종(祖宗) ᄉᆞᆫ쳔 잇건마ᄂᆞᆫ/예악(禮樂) 문물 변ᄒᆡ도다.”라고 읊조린 데에서는, 이것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의 왕궁을 헐고 창경원(昌慶苑)이라는 동식물원을 만들었던 사실을 이른 말임을 알 수 있다.
또 새로이 “슬프다 이 소회를/뉘를 ᄌᆞᆸ고 ᄒᆞᄌᆞᆫ말고/고금사를 ᄒᆡ여 보니/일층 비회(悲懷) 더하고ᄂᆞ.”라고 시작하여 작자 자신의 생애와 황실(皇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광무제에 대한 슬픔을 묘사해 나가는 중에 끝부분이 훼손되었다.
현재 학계에 알려진 것은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회에서 1968년에 경상북도 영주에서 수집하여 공개한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것도 끝부분이 훼손되어 불완전한 상태이다.
현재 판독할 수 있는 이 작품의 분량은 2율각 1구의 175구인데, 훼손된 부분도 꽤 많은 듯하다. 이 작품의 자수율은 거의 4·4조로 되어 있으나, 귀글체가 파괴되어 난삽하다.
이 작품의 가치는 불완전한 훼손본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유일한 「인산가」라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