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군 ()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인제 부분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인제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영서 북부 지역에 있는 강원특별자치도의 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영서 북부 지역에 있는 강원특별자치도의 군.
개관

동쪽은 고성군 · 속초시 · 양양군, 서쪽은 양구군 · 춘천시, 남쪽은 홍천군, 북쪽은 회양군 등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58′∼128°31′, 북위 37°49′∼38°30′에 위치한다. 면적은 1,645.20㎢이고, 인구는 3만 325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5개 면, 84개 행정리(41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에 있다.

자연환경

군의 동단부는 태백산맥이 종관(縱貫)하는 산악지대로서 무산(巫山, 1,320m) · 향로봉(香爐峰, 1,296m) · 설악산 · 점봉산(點鳳山, 1,424m) · 가칠봉(柯七峰, 1,240m) 등이 연봉을 이루면서 험준한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매봉(1,290m) · 대암산(大巖山, 1,304m)을 중심으로 하는 도솔산맥에 의해 양구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은 방대산(芳臺山, 1,444m) · 개인산(開仁山, 1,341m) · 가마봉(1,192m) 등이 연봉을 이루며 홍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소양강(昭陽江)의 여러 지류들이 군의 중앙부로 흘러들어 본류와 합류한다. 즉, 동쪽에는 용대리 동쪽 미시령에서 발원한 북천(北川)이 창암점(窓巖店)에서 남쪽으로 꺾어 용대리남교를 거쳐 한계리에 이르러 동쪽 한계령에서 발원한 한계천(寒溪川)을 합하고, 인제읍 합강리 동쪽에는 서화면 이포리에서 발원해 남류하는 서화천(瑞和川)과 상남면에서 발원한 내린천(內麟川)을 각각 합해 소양강의 상류가 된다. 남쪽에는 진동리 북쪽 박달령에서 발원한 방대천이 남서류하다가 쇠나드리[牛灘洞]에서 서류하면서 하덕교(下德橋)마을 앞에서 내린천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곳곳에 소규모의 하성단구와 분지가 발달해 주민의 주요 생활무대를 이룬다. 호수로는 소양호가 군의 남서부까지 이어져 있어 내설악으로 들어가는 수상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지질은 고생대 이전에 형성된 편마암류와 중생대에 이를 관입한 화강암류가 지표에 노출되면서 기암괴석을 이루어 수려한 자연경관이 여러 곳에 산재한다. 군의 대부분이 북부의 산지와 연결되는 험준한 산지이고 또한 한반도 동 · 서부의 분수령에 위치하기 때문에 희귀동 · 식물이 많아 학술적인 보존가치가 높다.

따라서 군내의 일부는 설악산천연보호구역과 대암산 · 대우산천연보호구역, 향로봉 · 건봉산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남북방향의 높은 산계(山系) 때문에 동서간의 교류가 매우 불리하지만 진부령(陳富嶺, 520m) · 미시령(彌矢嶺, 825m) 및 한계령(寒溪嶺, 917m) 등의 안부를 통해 일찍부터 동서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산간 내륙에 위치해 일기변화가 심한 산악기후의 특성이 나타나고 연교차는 물론 일교차도 매우 크다. 연평균 기온 11.9℃, 연중 최고 기온은 36℃, 최저 기온은 -17.5℃, 8월 평균기온 23.3℃이며, 연 강수량은 1,350.2㎜이다. 고도가 높아 냉해를 받기 쉬우며, 초여름 북동기류가 강할 때는 이상저온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가 많다.

역사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거주했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접한 홍천 지역에서 5만∼10만년 전의 중기구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이 지역에서도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북면 월학리 구미동 지역의 지석묘(支石墓) 군이나 남면 남전리에서 발견된 지석묘들은 인제 지역 선사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유적들이다. 지금의 인제는 고구려 때 저족현(猪足縣) 으로 불렸으며, 757년(경덕왕 16)희제현(狶蹄縣)으로 개칭되었고 양록군(楊麓郡)에 속하였다. 지금의 서화는 고구려 때의 옥기현(玉岐縣)으로 경덕왕 때 치도현(馳道縣)으로 개칭되고 양록군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희제현은 인제현으로, 치도현은 서화현(瑞和縣 또는 瑞禾縣)으로 개칭되었다. 그 뒤 1018년(현종 9) 두 현 모두 춘주(春州)에 속했다가 뒤에 회양(淮陽)의 속현이 되었으며, 1389년(공양왕 1)인제현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 관례에 따라 인제현에 현감을 두고 읍치를 지금의 인제읍으로 옮겼다. 세종 때 서화가 인제현에 내속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관군을 이끌고 분투하던 조옥립(趙玉立)이 패주해 이곳 원대리에 숨어 있을 때 그의 부인 김씨는 호적(胡賊)들에게 붙잡혀 갖은 문초와 형극을 당했으나 끝내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화형당하였다.

1895년춘천부 인제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강원도 인제군이 되었다. 남면 갑둔리는 천도교 제2대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이 김현수(金顯洙) · 조시철(趙時哲) · 이명수(李明秀) 등의 집에서 포교한 곳이며, 천도교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이 간행된 곳이기도 하다.

1906년현내면이 군내면으로 개칭되었고, 1916년군내면이 인제면으로 개칭되었다. 1919년 3 · 1운동이 일어나자 이곳에서는 서병선(徐秉善)의 지도 아래 인제보통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3월 29일에 시위를 벌이고자 계획하던 중 3월 27일 발각되어 관련자들은 모두 검거되고, 주모자 서병선 · 이성종(李聲鍾) · 이종근(李鍾根) · 심한구(沈漢龜) 등이 구속되었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38도선을 경계로 양단되면서 인제면 · 기린면 일부, 북면 · 서화면과 인제면 일부가 공산치하에 들어가고, 남면 · 내면 · 기린면이 홍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50년 6 · 25전쟁이 발발하자 남면 수산리에서는 청장년 40명이 결사대를 조직해 장만규 등 고정간첩 3명을 제거하고 7월에는 반달골에서 북괴 정규군 80명을 격퇴하는 등 이 지역 주민들은 멸공전선에 앞장섰다.

휴전협정이 성립된 후 1954년 2월 20일이 지역에는 군정이 실시되고, 농민수복령으로 주민입주가 시작되었으며, 10월 21일에는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양구군의 해안면과 홍천군의 남면 · 기린면이 이 지역에 편입되었다.

1963년해안면이 서화면에 통합되었고, 1973년 춘성군 북산면 수산리와 양구군 남면 상수내리 · 하수내리가 인제군 남면에, 홍천군 내면 미산리가 인제군 기린면에, 인제군 남면 두무리가 양구군 남면으로, 서화면 현리 · 오류리 · 만대리 · 후리 · 월산리 · 이현리가 양구군 동면으로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1일인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2월 15일기린면 상남출장소가 상남면으로 승격되어 남면 금부리, 기린면 하남리 · 상남리 · 미산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93년인제읍 덕산리 일부가 북면으로 편입되었다.

유물 · 유적

인제군의 문화유적은 18건으로, 국가지정유산은 보물 4개, 천연기념물 2개, 강원도지정유산은 기념물 2개, 그리고 문화유산자료 3개이다.

선사시대유적으로는 1972년북면 월학리에서 간돌칼 1점과 간돌화살촉 14점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북면 원통리일대에서 고인돌 3기가 발견된 바 있다.

산성지로는 신라 경순왕 때 축성하고 그 뒤 고려 · 조선 왕조를 통해 계속 보수되었던 북면 한계리의 한계산성(강원도기념물, 2019년 지정)을 비롯해 인제읍의 합강리성지(合江里城址), 서화면의 서화리성지가 있다. 또한, 북면 월학리 마평 뒷산에는 조선시대에 봉화대를 설치했던 봉화대터가 남아 있다.

현존 사찰은 백담사(百潭寺) · 봉정암(鳳頂庵) · 오세암(五歲庵) · 석황사(釋皇寺) 등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남면 신남리의 암자에 있던 것을 소양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인제읍 상동리백련정사(白蓮精舍)로 옮겨온 상동리삼층석탑 및 석불좌상을 비롯해 인제읍 원대리삼층석탑, 북면 한계사지(寒溪寺址)의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 2기와 불상광배 · 석등개석 · 석불 · 석불연화대 등이 있다. 상동리삼층석탑 및 석불좌상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외에 북면 용대리의 인제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1993년 지정) · 봉정암석가사리탑, 서화면 서화리의 삼층석탑, 남면 갑둔리와 상남면 상남리의 인제 갑둔리 오층석탑 및 주변 탑재 일식(강원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등이 있다. 봉정암석가사리탑은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또한, 절터로는 북면 한계리의 인제 한계사지(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를 비롯해 용대리의 영시암지(永矢庵址) · 원명암지(圓明庵址) · 축성암지(祝聖庵址)와 서화면 서화리큰골[大谷]의 서룡암지(瑞龍庵址)가 있다.

인제읍 상동리의 인제향교(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조선 초에 건립되었으나 그 뒤 전화로 몇 차례 소실된 뒤 대성전만이 조선시대 건물로 남아 있을 뿐이고 그 밖의 건물은 1958년에 복원된 것이다.

비석은 지방관의 선정비가 여러 곳에 있는데, 인제읍 합강리에 이재(李縡)의 도암이선생유허비(陶庵李先生遺墟碑), 상남면 하남리에 유재구불망비(柳在龜不忘碑), 기린면 현리에 박원굉묘비(朴元宏墓碑)가 있으며, 인제읍 원대리의 열녀삼척김씨정려각을 비롯한 정려각이 여러 곳에 있다.

정자로는 인제향교 안의 영소루(靈昭樓), 북면한계령상 위령탑 앞의 설악루(雪嶽樓), 인제읍 합강리의 합강정(合江亭), 남북리의 봉미정지(鳳尾亭址), 서화면 서화리의 망월정지(望月亭址), 인제읍 남북리의 경로정(敬老亭), 기린면 서리의 청류정(淸流亭), 현리의 하마정(下馬亭) 등이 있다.

한편, 6 · 25 당시 인제지구전투에서 유엔군이 인제읍내 북쪽 2㎞ 지점인 합강정 근방에서 격전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해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는데, 지휘관 리빙스턴(Livingstone)중령의 유언에 따라 그의 부인이 휴전 후 건설한 리빙스턴교가 있다.

인제군은 설악산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965년 지정)에 속하며 서화면 일부와 북면 일부는 대암산 · 대우산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973년 지정)에, 서화면의 다른 일부는 향로봉 · 건봉산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973년 지정)에 속해 있다. 보호수로는 수령 500년 이상 된 인제읍 합강리의 느티나무와 상남면 하남리의 은행나무가 도나무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610년(광해군 2)에 창건된 인제향교와 인제현의 소재지였던 귀둔리에 귀둔향교(貴屯鄕校)가 있었다. 서당도 몇 군데 있었다고 하나 1903년 서당규제령을 계기로 대부분 철폐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2년에 설립된 인제보통학교가 최초이며, 그 뒤 1913년에 인제정의여학당(麟蹄貞宜女學堂), 1922년에 서화보통학교, 1923년에 기린보통학교, 1938년에 관대보통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54년에 인제중학교의 전신인 홍천중학교 인제분교가 인제읍 상동리에 설립되었으며, 1955년인제종합고등학교가 합강리에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9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1984년에 개원한 합강문화제를 비롯해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자료의 연구결과를 출판해 향토문화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박물관으로는 인제산촌민속박물관, 공공시설로는 인제도서관, 기타 문화시설로는 복지회관, 청소년회관이 있다. 체육시설은 실내체육관, 종합운동장가 있으며, 이밖에도 테니스장 등이 있다.

민속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뗏목놀이 · 횃불싸움 · 달맞이 · 연날리기, 그리고 서화면의 투석전 등을 들 수 있다.

뗏목놀이는 한동안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1985년에 재현된 놀이로, 제3회 강원민속경연대회에서 종합 최우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임목(林木)자원이 풍부한 인제 지방에서는 벌채한 원목을 합강정 모래사장에 야적했다가 뗏목으로 엮어 서울까지 운반하였다.

이 벌채와 운목과정은 나름대로의 격식을 가지고 있었다. 벌채할 때는 잡귀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치성제를 올리고 첫 도끼질을 하며 “어명이요.”하는 소리를 지른다. 그 뒤 벌채된 원목은 뗏목으로 엮어 강물이 불었을 때 운반하게 된다.

뗏목여행은 소양강과 북한강을 흘러내리는 여러 날 동안의 장정(長程)이므로, 뗏목꾼들은 「뗏목아리랑」을 흥겹게 부르면서 무료함을 달랜다. 종착지인 서울 뚝섬이나 광나루에 닿으면 뗏목여행은 끝을 맺게 되고, 뗏목꾼들은 선주로부터 노임이나 광목 등 생필품을 받고 귀향한다. ‘인제뗏목놀이’는 이러한 과정을 놀이화해 재구성한 것이다.

숯가마등치기놀이는 인제군은 예부터 산림자원이 풍부하여 소양강을 따라 뗏목으로 서울 궁중에 건축자재와 연료를 공급해 온 산림산업 문화의 발원지로서 조선후기 세워진 황장금표(黃腸禁標)가 바로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특히 인제군 남면 숯둔골(화탄)에는 약 300년 전부터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해 온 곳이며 이로 인하여 이름도 숯둔골이라 불리워 왔고 비록 산골 마을이지만 벼농사도 잘되어 벼‘禾’자와 숯‘炭’자를 써서 화탄“禾炭”이라 명명 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숯가마등치기소리가 전래되고 있다.

경복궁의 십장생굴뚝 등을 해체 분석한 결과 숯을 궁중의 화재방지를 위한 난방용 연료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어 전국에서 가장 좋은 숯으로 소문이 나 있었던 지난날의 숯둔골 백탄과 흑탄이 궁중에까지 공급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숯굽기놀이 재현은 1987년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제2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강원도 대표로 출전하여 우수상으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한바 있어 산간 산림 민속사를 널리 홍보한 바 있다.

인제 조경동 갈이남박 생활사는 깊은 산중에서 나무를 이용하여 생활의 필수품이었던 함지, 남박, 목기접시, 촛대 등을 만들어 상거래를 하면서 생계를 영유하였다. 옛 민속사인 갈이남박 만들기를 발굴하여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재현을 한 바 있다. 1989년 제7회, 1996년 제14회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인제에서는 대개 마을 단위로 서낭당이나 산신당이 있어 매년 동제를 지냈다. 북면 용대리의 경우는 서낭당과 산신당이 모두 있는데, 이곳 산신당에 모신 산신은 여신이고 남신은 샛령[小間嶺]마루의 산신당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매년 삼월삼짇날과 9월 중구일에 제를 올린다.

3월의 제는 서낭당제로 돼지머리와 소주를 제수(祭需)로 쓰지만 9월의 제는 산신당제사로 산돼지를 산신당까지 끌고 가 그곳에서 잡아서 쓴다. 제가 끝나면 제물은 마을의 가구마다 골고루 분배해 음복하게 한다.

한계리의 동제도 용대리와 비슷하나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진설했던 음식을 수배신 앞에 옮겨 놓고 수배제(隨陪祭)를 따로 지내는 점이 특이하다. 수배신은 산신의 종자(從子)로서 늘 산신을 모시고 있기에 산신당 옆에 수배당을 설단해 놓은 것이다.

군은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동서를 넘나드는 분수령 근방의 동제단은 그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개를 지나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숭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옛날 이곳을 내왕하던 등짐장수들은 영마루 근처의 서낭당이나 산신당에 제를 올릴 때는 같이 참여해 축원을 올렸고 경제적인 협조도 기꺼이 하였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내설악을 포함하고 있는 관계로 여러 명승지에 얽힌 전설이 많으며 또한 여러 지명전설도 있다. 「사찰연기설화(寺刹緣起說話)」 · 「홍수전설」 · 「아기장수설화」 · 「장자못설화」 등도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백담사사찰연기설화」는 다음과 같다. 이 사찰은 원래 낭천(狼川 : 지금의 화천)땅에 비금사(比琴寺)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그런데 이 근처에서 살생을 하는 등 불도에 어긋난 일들이 자꾸 일어나서 이 절을 이 고장 북면 한계리로 옮겨서 한계사라 칭하였다. 이 절을 옮기는 도중에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렸는데, 춘천군의 절구골은 이 때 절구를 떨어뜨린 곳이며 한계리 부근 청동곡(靑銅谷)은 청동화로를 떨어뜨린 곳이라 한다.

한계리로 절을 옮긴 뒤에는 다섯 차례나 화재를 입었는데, 하루는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청봉에서 절까지 물굽이[潭] 수를 세어보라.”고 일러주었다. 이튿날 청봉에서 절까지 물굽이를 세어보니 100개가 되어서 절을 지금의 자리에 세우고 절 이름을 백담사(百潭寺)라 명명하였는데 그 뒤로 절이 번창하였다.

「귀둔리의 용소전설(龍沼傳說)」은 용마(龍馬)가 바위에서 울고 간 뒤로 자연소가 생겼으며, 비가 내리면 용마가 우는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또 용소에 개를 잡아넣으면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소나기가 퍼붓는다고 한다.

홍수전설로는 방대산의 「배닿은 돌전설」이 있다. 옛날 대홍수가 났을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돌에 배를 매달아 놓았다고 해서 배닿은 돌이라고 한다. 이 바위틈에서는 요즈음도 조개껍데기가 출토된다고 한다.

이 밖에도 「황소를 잡아먹은 이무기와 장가(張家) 바위전설」, 월궁의 선녀가 하강해 목욕을 한 「옥선녀탕전설(玉仙女湯傳說)」, 손님 오는 것을 꺼려 닭바위의 볏 부분을 깨부수고 망한 김씨집안 이야기, 용연동(龍淵洞)의 「아기장수설화」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베틀노래」 · 「소몰이소리」 · 「김매기노래」 · 「뗏목아리랑」 등 노동요와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 기타 월령체 형식으로 된 「사친가(思親歌)」 · 「금강산유람가」 · 「메나리」 · 「장타령」 · 「메밀타령」 등이 있다.

이 고장은 예로부터 삼림자원이 풍부해서 여러 지방에 재목이나 화목을 공급해 왔다. 이곳의 나무는 소양강의 뗏목을 통해 춘천과 서울로 운반되었다. 이 뗏목꾼들이 부르던 「뗏목아리랑」이 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앞사공 뒷사공 조심하게/포와리 물사품이 치솟는다/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가네…… 창랑에 뗏목을 띄워노니/아리랑 타령이 처량도하네/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보매기여울을 거쳐나가세……. ” 곡조는 거의 「강원도아리랑」조를 띤다.

뗏목을 탈 때 말고도 「아리랑타령」을 부르는데, “간다 간다 나는 간다/떨떨거리고 나는 간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속에서 노다가자…… 전봇줄 끊어진 것은 납으로 때고/정든님 끊어진 것은 직조땜이나 할까…… 산도 설고 물도 선데/나누구를 바라고 여기를 왔나.”와 같다.

「소몰이소리」는 “이랴 이랴아 이러어 말어∼마라 마라아/드렁 밟지 말고 이랑타고 나가자 아∼/이러……. ”와 같다. 「메밀타령」은 “엉덜멍덜 메밀밭에 메밀을 한되 뿌렸더니/무슨대가 나왔더냐 빨간대가 나왔더라/무슨꽃이 피었더냐 하얀꽃이 피었더라/……양어깨에 질머져다 마당에다 넣어놓고/도리깨와 벼락맞추어 치바닥에다 호사를태와/멍석에다 햇빛뵈여 망에다 골을태겨…….”와 같다.

강원도의 각 장의 특징을 노래하는 「장타령」을 들어보면 “이강저강 평강장 강물없어 못보고/정들었다 정선장 갈보많아 못보고/화목(火木)많은 화천장 떼꾼많아 못보고/지금왔다 인제장 일바빠서 못보고/안창곱창 평창장 술국좋아 못봤네.”와 같다. 이밖에도 동요로 「연날리기노래」와 「아기 어르는 노래」 등이 전승되고 있다.

산업 · 교통

내륙산간지대이기 때문에 농경지의 규모가 적어 하천의 범람원과 하성단구 및 산록완사면 등에 분포하고 있다. 경지면적은 4,590㏊ 중 논이 1,425㏊, 밭이 3,165㏊로 밭이 훨씬 많다. 농가수는 2,765호에 8,118명이다.(2003년 현재)

주요 농산물은 쌀과 옥수수 외에 콩 · 메밀 · 수수 · 감자 등과 여름철에 고랭지채소나 고추 · 마늘 등 양념류의 생산도 증가하고 있다. 소양호에서는 내수면어업이 이루어져 향어를 비롯해 붕어 · 메기 · 쏘가리 등이 어획되며 한우는 인제읍 · 기린면 · 남면 · 북면, 젖소 사육은 남면, 양계는 북면 · 남면 · 인제읍, 양봉은 남면 · 인제읍이 중심지이다.

특히 이 지역의 토종꿀은 예로부터 이름난 특산물이다. 오늘날에도 ‘인제꿀’로 도시에서 인기가 높다. 토종벌은 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요 생산지인 북면의 한계리, 용대리와 기린면의 맹동리 일대가 이른바 ‘재래봉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용대리일대에서 재배되고 있는 치커리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임야면적 15만 9,317㏊ 중 국유림 11만 7,240㏊, 공유림 4,866㏊, 사유림 3만 7,211㏊이다. 임목지 15만 4,099㏊ 중 침엽수림 3만 7,686㏊, 활엽수림 6만 1,035㏊, 혼효림 5만 9,644㏊이다. 주요 임산물은 밤 · 대추 · 잣 · 은행 등의 종실류와 느타리 · 송이 · 목이버섯 · 약초 등이다. 용대리 일대는 명태의 황태(黃太)덕장이 있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정기시장(5일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770년대 군내에는 읍내장 1개만이 3 · 8일에 개설되었고, 1830년대에도 읍내장만이 2 · 7일에 개설되었다.

1912년대에는 읍내의 인제장과 기린면의 현리장(縣里場)이 3 · 8일, 남면 부평리의 음양장(陰陽場)과 서화면 서화리의 서화장(瑞和場)이 4 · 9일, 북면 원통리의 원통장(元通場)이 2 · 7일, 내면 창촌리의 창촌장(蒼村場)이 1 · 6일에 개설되는 등 6개로 증설되었다.

1923년대에는 인제장 · 원통장 · 성화장 등은 개시일이 변동이 없었고, 남면 관대리에 관대장(冠垈場)이 4 · 9일, 서화면 이포리에 이포장(伊布場)이 1 · 6일, 현리장이 4 · 9일, 창촌장이 3 · 8일에 개설되는 등 일부가 변동되면서 7개로 증설되었고 1926년에는 1923년대와 마찬가지로 7개가 개설되었다.

1938년대에는 인제장과 창촌장이 2 · 7일, 관대장과 북면 용대리의 용대장(龍垈場), 서화면 장승리의 장승장(長承場)과 현리장이 3 · 8일, 남면 어론리의 어론장(禦論場), 서화장 · 이포장이 4 · 9일, 원통장과 내면 광원리의 광원장(廣院場)이 1 · 6일에 개설되는 등 11개로 증설되었다.

1963년대에는 인제장이 2 · 7일, 인제읍 귀둔리의 귀둔장(貴屯場)이 5 · 10일, 현리장과 남면 신남리의 신남장(新南場)이 3 · 8일, 원통장, 장촌장이 1 · 6일, 상남리에 상남장(上南場)이 4 · 9일에 개설되는 등 7개로 감소되었다.

1976년대에는 인제장이 4 · 9일, 신남장, 현리장이 3 · 8일, 원통장이 2 · 7일, 서화면 천도리의 천도장(天桃場)이 1 · 6일에 개설되는 등 5개로 감소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통은 산간내륙지방이므로 주변지역과는 높고 험한 고개를 통해 연결된다. 인제읍을 중심으로 44번 국도가 양양∼홍천, 31번 국도가 양구∼평창, 46번 국도가 고성 등지와 연결된다. 지방도는 446번이 신남∼진부, 453번이 원통 · 해안 · 임당, 466번이 용대∼속초 등을 연결하는 4개 노선이 있다.

시 · 군도는 10개 노선이 있어 각 읍 · 면 지역과의 교통이 이루어지는데, 이들 노선을 보면 1번 서화∼노선, 2번 하담∼귀둔, 3번 정자문∼현문, 4번 관대∼하추, 5번 합강∼현리, 6번 신남∼하남, 7번 원대∼김부, 8번 서림∼현리, 9번 방동∼광원, 10번 가리산∼한계령 등이 있다. 한편, 소양호댐에서 군축령(軍築嶺)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소양호의 수로가 개설되어 있으나 자동차 교통과의 연계가 쉽지 않아 이용객이 적다.

2017년 6월 서울양양고속도로 전 구간이 개통되었으며 인제 나들목은 상남면 하남리에 있다.

관광

설악산 서부 일대의 내설악은 무수한 기암 괴석이 중첩한 산봉우리와 계곡 · 폭포 · 사찰 등이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산악 관광지이다. 특히 한계령 · 마등령을 비롯해 대승폭포 · 소승폭포 · 십이선녀탕(十二仙女湯)가 야동계곡 · 구곡담계곡 · 백담계곡 등은 아름다운 절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백담사 · 오세암 · 봉정암 등의 사찰이 수려한 내설악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내설악의 등산코스는 인제 · 용대리 · 백담사 · 오세암 · 마등령, 또는 인제 · 용대리 · 백담사 · 봉정암 · 소청봉으로 가는 경우와 인제 · 한계령 · 옥녀탕 · 장수대 · 대승폭포 · 백담사로 가는 길이 있다.

내설악에는 장수대산장 · 봉정암산장 · 공무원휴양소 등이 있으며, 인제에서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는 도로와, 용대리 · 진부령을 지나 간성으로 가는 도로 등이 확장 · 포장 되었다. 또한 장수대와 백담지구에 많은 관광객을 일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현대적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등산객들을 위해 내설악의 험난한 길을 보수하였다.

인제팔경(麟蹄八景)은 군내의 수려한 여덟 가지 경관으로 제1경은 합강정조망(合江亭眺望 : 합강정 일대의 맑은 물, 울창한 숲, 우뚝 솟은 기암절벽을 정자에서 바라봄), 제2경은 만호대완월(萬戶臺玩月 : 만호대에서 보름날의 야경을 구경), 제3경은 군축령낙조(軍築嶺落照 : 군축령에서 바라다보는 저녁노을이 매우 아름다움), 제4경은 소양호관광선(昭陽湖觀光船 : 소양댐에서 군축령까지의 64㎞ 뱃길), 제5경은 백련정사모종(白蓮精舍暮鐘 : 석양에 멀리 들리는 백련정사의 저녁종소리가 은은함), 제6경은 아미산상풍(峨嵋山賞楓 : 아미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의 단풍미), 제7경은 소양호조대(昭陽湖釣臺 : 이른 봄부터 가을철에 이르는 소양호 일대의 낚시터), 제8경은 팔봉산설경(八峰山雪景 : 합강 건너편에 웅장하게 자리잡은 눈 덮인 팔봉산의 설경)을 말한다.

그리고 기린면 방동리에 있는 방동약수는 급만성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인제군의 문화관광축제로는 빙어축제, 레포츠축제, 합강문화제, 황태축제, 고로쇠축제, 군인추억페스티발 등이 있다. 빙어축제는 매년 2월초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 지류와 내린천의 관문인 소양호에서 개최된다. 빙어축제에서는 빙어낚시대회, 빙어 시식회 등 빙어를 주제로 한 행사와 빙상볼링, 전국대회 규모의 얼음축구대회, 스노우산악자전거대회 등의 레포츠 경기, 그리고 눈썰매장, 이글루와 눈조각전시 등 눈과 얼음을 주제로한 체험행사를 개최하게 되며, 수몰지역 및 주변 산촌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민속놀이 및 세시풍속을 재현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합강문화제는 1983년 10월 27일 시작된 향토문화축제로 합강(合江)이라는 자연지리적 경관과 역사지리적인 상징성을 전승시키고 있는 인제군의 대표적인 문화축제이다. 2001년에 17세기 후반부터 전승되던 중앙단을 복원하여 제례를 봉행하고, 전통민속경기, 군민체육대회, 경축행사, 박인환 문학제 및 예술전시행사 등이 개최되고 있다.

래프팅축제는 매년 7월경 미산계곡과 진동계곡에서 진행된다.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은 2003년 10월 8일 개관하여 산촌사람들의 생업과 신앙, 음식, 놀이 등을 모형, 실물, 패널, 영상매체 등으로 전시하고 있다.

만해마을은 "만해기념관"을 비롯하여 청소년의 심신수련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읍 · 면
  1. 인제읍(麟蹄邑)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315.44㎢, 3,749세대, 인구 9,624명으로 남자 4.985명, 여자 4,69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상동리이다.

본래 인제현의 소재지이므로 현내면이라 하여 하도 · 상도 · 덕산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06년군내면(郡內面)으로 개칭해 상도 · 동 · 남 · 북 등 11개 리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내면과 동면을 병합해 군내면으로 했으며, 1916년인제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지역의 일부가 38도선 이북에 포함되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해 수복되었으며,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고, 1993년덕산리 일부가 북면으로 편입되었다.

읍의 대부분은 가리봉(加里峰, 1,519m) · 점봉산 · 가칠봉 등 높고 험한 산지이며, 평지는 소양강 연안의 소규모 하성단구와 산록사면에 약간 분포해 주민의 생활터전이 된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임업이며, 약초 · 토종꿀 · 버섯류는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내설악계곡인 가리산리에는 희귀어족인 열목어(熱目魚)가 서식한다.

교통은 44번 국도가 홍천에서 소양호강 연안을 따라 관내를 통과해 북동쪽의 한계령을 지나 양양읍에 이른다. 또한, 31번 국도가 서쪽의 양구와 남쪽의 평창방향, 46번 국도가 진부령을 통해 고성방향으로 연결된다. 또한 4번 군도가 가리산(하추)∼관대, 5번이 합강∼현리, 10번이 가리산∼한계령을 이어 주는 등 종전보다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상동리에 석불좌상 · 인제향교, 백련정사, 상동리3층석탑, 충혼탑, 인제지구전투전적비, 군축령충혼비와 이 밖에 남북리에 봉미정지 · 경노정, 원대리에 삼층석탑, 삼척김씨정려각, 합강리에 합강정 · 사지 · 성지, 덕산리에 리빙스턴교, 귀둔리에 전주김씨열녀문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상동(上東) · 남북(南北) · 합강(合江) · 덕산(德山) · 덕적(德積) · 가아(加兒) · 고사(古沙) · 원대(院垈) · 하추(下楸) · 가리산(加里山) · 귀둔(貴屯) 등 11개 리가 있다.

  1. 기린면(麒麟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75.24㎢, 2,069세대, 인구 5,120명으로 남자 2,690명, 여자 2,430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현리이다.

본래 조선 초기까지 기지현(基知縣)이었으나, 1413(태종 13)기린현으로 개칭되었다. 1906년인제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남리(上南里) 일부는 남면 금부리(金富里)에 이관되고, 군내면의 하추리(下楸里) 일부가 편입되어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45년 지역의 일부가 38도선 이북에 포함되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홍천군으로부터 앞의 2개 리의 일부가 환원되었다. 1973년홍천군 내면 미산리를 편입했고, 1983년상남출장소가 상남면으로 승격되면서, 상남 · 하남 · 미산의 3개 리가 기린면에서 분리해 상남면에 이관되었다.

면의 대부분 지역은 방대산 · 구룡덕봉(九龍德峰) · 가칠봉 등 높고 험한 산간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방대천과 내린천의 합류지역인 현리 일대에만 산간분지가 발달되어 주민의 대부분이 거주한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 감자이고, 특산물은 송이버섯 · 약초 · 토종꿀 등이다.

교통은 31번 국도가 인제∼평창간을 연결하고, 2번 군도가 하담∼귀둔, 5번이 현리∼합강, 8번이 서림∼현리, 9번이 방동∼광원 등과 연결되고 있어 종전보다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현리에 하마정, 효자 이영순정려문, 춘천박씨 시조 박항(朴恒)의 장남 박원굉 묘역, 서리에 청류정, 북리에 순천김씨열녀각, 진동리에 조선 후기 과다한 공납으로 백성들이 기근에 처하자 부사를 찾아가 지역 사정을 호소하고 공납의 감면을 요청하여 면세를 받았던 엄공경(嚴恭敬)의 공을 기리는 불망비 등이 있으며, 방동리의 방동약수는 약효가 있어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현(縣) · 방동(芳東) · 서(西) · 북(北) · 진동(鎭東) 등 5개 리가 있다.

  1. 남면(南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43.35㎢, 1,693세대, 인구 4,158명으로 남자 2,175명, 여자 1,983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남리이다.

본래 인제군 남쪽이 되므로 남이라 하여 두모 · 건달 · 신촌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린면의 상남리(上南里) 일부를 편입해 두무 · 신월 · 관대 등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1945년 지역의 일부가 38도선 이북에 포함되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해 수복되었으며, 1973년소양강다목적댐 건설에 따라 수몰로 양구군 남면의 상수내리 · 하수내리와 춘천군 북산면의 수산리를 편입했고, 두무리(斗武里)를 양구군 남면에 이관했으며, 1983년상남면이 설치되면서 금부리(金富里)를 이양하였다.

면의 북동부를 차지하는 소양호로 인해 평지는 소양강 지류가 형성하는 좁고 긴 곡저평야 이외에는 망대봉(望臺峰, 773m) · 수리봉(704m) · 응봉산(鷹峰山, 887m) 등의 높고 험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각천 · 어론천이 소양호로 흘러들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 감자 등이고, 각종 산나물 · 송이버섯 · 토종꿀 · 잣 등이 생산된다. 소양호에서의 내수면 어업도 행해지고 있으며, 주민의 대부분은 홍천군 홍천읍을 생활권으로 삼고 있다.

교통은 신남리에서 44번 국도와 46번 국도가 교차해 홍천 · 양구 · 속초 등지와 연결되고, 446번 지방도가 신남에서 상남∼진부로 연결되며, 4번 군도가 관대∼하추, 5번이 덕적∼현리, 6번이 신남∼하남, 7번이 원대∼김부 등과 연결되고 있어 종전보다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갑둔리에 오층석탑 및 주변 탑재, 어론리에 마의태자유적지비, 남전리에 어덕준장군송덕비, 제3군단사령부 주둔기념비, 제1야전군 사령부부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남(新南) · 어론(於論) · 신풍(新豊) · 부평(富坪) · 남전(藍田) · 관대(冠垈) · 신월(新月) · 수산(水山) · 상수내(上水內) · 하수내(下水內) · 갑둔(甲屯) · 정자(亭子) 등 12개 리가 있다.

  1. 북면(北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9.05㎢, 3,351세대, 인구 8,290명으로 남자 4,335명, 여자 3,955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통리이다.

본래 인제군 북쪽이 되므로 북면이라 하여 원통 · 가력 · 용대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계 · 원통 등 4개 리로 개편되었다.

1945년 지역의 일부가 38도선 이북에 포함되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해 수복되었으며, 1993년인제읍 덕산리 일부가 편입되었다.

면의 북부에 칠절봉(七節峰) · 신선봉 등과 동부에 설악산, 남부에 가리봉 · 삼형제봉 등이 있으며, 영실천 · 북천 · 한계천이 흐르고 있다. 절반 이상의 면적이 설악산국립공원의 내설악으로 되어 있어 높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형성한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 감자 등이며, 특산물로는 한약재 · 산나물 · 토종꿀 · 송이버섯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여름의 송이버섯 채취는 주민소득에 큰 도움이 된다. 양계와 양돈은 군내 1위이다. 용대리 일대에서 생산된 황태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교통은 면 소재지인 원통리를 중심으로 44번 국도와 453번 지방도가 갈라져 인제읍 · 서화면 및 한계리와 연결되고, 한계리에서는 44번 국도가 한계령을 거쳐 양양으로 통하고, 46번 국도가 고성으로 통한다. 용대리에서는 46번 국도가 진부령 · 고성으로 통하고, 미시령을 지나 속초로 연결되는 466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은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용대리에 백담사를 비롯해 백담사목조아미타불좌상부복장유물 · 봉정암석가사리탑, 한계리에 한계산성 · 한계사지 등이 있다. 이 밖에 월학리에는 선사유적지와 봉화대지가 있으며, 명승지로는 내설악의 장수대 · 대승폭포 · 소승폭포 · 쌍폭 · 십이선녀탕 · 옥녀탕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원통(元通) · 월학(月鶴) · 한계(寒溪) · 용대(龍垈) 등 4개 리가 있다.

  1. 상남면(上南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97.78㎢, 773세대, 인구 1,797명으로 남자 934명, 여자 863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남리이다.

본래 기린면과 남면 지역이었으나 1973년소양댐 건설로 수몰지역이 생겨나 춘천에서 양구 · 인제를 연결하던 소양강 계곡의 도로가 화천과 홍천을 지나는 우회도로에 의해 연결됨에 따라 상남리를 중심으로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3년기린면 상남출장소가 상남면으로 승격되면서 남면의 금부리와 기린면의 하남리 · 상남리 · 미산리를 합해 상남리의 이름을 따서 상남면이 되었다.

면의 동쪽은 태백산맥을 이루는 방대산 · 구룡덕봉 · 개인산 · 침석봉(砧石峰, 1,324m) · 숫돌봉 등 높고 험한 산들이 솟아 있다. 그러나, 서쪽은 가득봉(可得峰, 1,060m) · 가마봉(可馬峰, 1,192m) 외에는 곳곳에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이 형성되어 있다.

내린천 유역의 산간분지인 하남리와 상남리 일대와 소양강 지류의 금부리 지역이 주민의 생활근거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와 감자이며, 그 밖에 송이버섯 · 약초 · 산나물 · 꿀 등의 특산물이 생산되고, 최근에 고랭지채소의 재배로 소득을 증대시키고 있다.

교통은 31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뻗어 북쪽으로 인제, 남쪽으로는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를 거쳐 영동고속국도와 연결된다. 상남리에서는 446번 지방도가 동서로 뻗어 서쪽의 남면에서 44번 국도와 연결되고, 동쪽의 홍천군 내면에서 56번 국도와 연결되는 등 내륙지방이지만 종전보다 훨씬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하남리에 유재구불망비와 은행나무, 상남리에 전주이씨정려각, 미산리에 강릉김씨정려각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상남(上南) · 하남(下南) · 미산(美山) · 금부(金富) 등 4개 리가 있다.

  1. 서화면(瑞和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5.22㎢, 1,408세대, 인구 3,328명으로 남자 1,815명, 여자 1,513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천도리이다.

본래 고려 때 서화로 회양(淮陽)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세종 때 인제군에 속했으며, 1896년인제군 서화면이 되어 장승 · 가전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심적 · 천도 등 8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945년 지역의 일부가 38도선 이북에 포함되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주민이 살게 되었다. 1963년양구군 해안면이 이 면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에는 현리 · 오류리 · 만대리 · 후리 등 옛 해안면 지역이 대부분 양구군 동면으로 편입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무산 · 칠절봉(七節峰, 1,172m) · 가칠봉 · 대암산 등 험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나, 면의 중앙부를 남류하는 서화천 유역에 서화분지를 이루어 주민의 생활근거지로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 감자 등이고, 그 밖에 토종꿀 · 잣 · 송이버섯 등이 생산되며, 서화리에는 열목어 양식장이 있다.

교통은 453번 지방도가 원통∼서부∼해안∼임당을 연결하고, 1번 군도가 서화∼노선, 3번 군도가 설피∼용대를 연결해 종전보다 개선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서화리에 성지 · 망월정지 · 서룡암지와 향로봉 · 건봉산천연보호구역, 천도리에 백인엽장군송덕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천도(天桃) · 서흥(瑞興) · 서화(瑞和)와 주민미거주지인 가전(加田) · 심적(深積) 등 5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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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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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www.inje.gangw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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