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김인겸(金仁謙)이 지은 기행가사.
개설
내용
군관 17명, 역관 12명, 의원 3명을 비롯, 100여명의 행원(行員)과 400명에 달하는 역원들을 합하여 일행 500명이 서울을 떠난 지 두달 만인 10월 6일 부산항에서 승선하여 대마도와 대판성(大阪城)을 거쳐 에도(江戶)에 도착한 것이 다음해 2월 16일이다.
이역만리의 긴 노정에 따라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 일본의 풍속, 외교임무의 수행과정 등을 소상히 기록하였고, 강직한 선비의 기개와 비판의식이 넘쳐 있을 뿐 아니라, 기행문의 요체가 잘 갖추어져 있어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작자 김인겸은 1753년(영조 2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통신사의 서기로 발탁되기까지 향리 공주에 칩거한 강직 청렴한 선비로서, 문장에 특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행로에서 받은 융숭한 대접과 풍물에 대한 이야기며, 수천수에 달하는 시를 지어 왜인에게 준 문인외교의 편모를 알 수 있다.
특히 “당당한 천승국의 예물예단 가져와서 개돝 같은 취류에 사배(四拜)하기 어떠할꼬.”라는 구절에서는 개돝 같은 왜놈에게 예배하기 싫어 상사(上使)들의 강권도 듣지 않고 국서 봉정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작자의 대일감정을 엿볼 수 있다. 왜녀의 음란한 풍속과 일본의 경관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특유의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국문학자료로서는 물론, 외교사절단의 규모와 일본의 풍속 및 외교의 방법 등, 한일외교사의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작품은 가사체로 된 기행문이라는 특성 때문에 서정적 가사라기보다 기행수필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도 있다.
참고문헌
- 『해행총재(海行摠載)』
- 『한국고전문학의 이해』(장덕순, 일지사, 1973)
- 「일동장유가」(심재완, 『어문학』17·19·20, 196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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