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계수(季修), 호는 회계(廻溪). 이만상(李萬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징룡(李徵龍)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덕윤(李德潤)이며, 어머니는 조의봉(趙儀鳳)의 딸이다.
1753년(영조 29) 진사가 되고, 175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757년 정언이 되고, 1761년 왕세손의 입학례를 행하고 좌익선(左翊善)이 되었다. 이후 누차 경연에 참여하여 왕을 보도하였다.
1762년 기우(祈雨)를 신중하게 할 것을 간하다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되거나 다음 관직이 제수될 때까지의 대기상태)되었다가 그 해에 독운어사(督運御史)로 북도에 파견되었다. 1763년에 수찬이 되고, 이후 부교리·교리를 거쳐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1764년 이 공으로 가자되고 승지에 올랐다. 이후 대사간으로 있으면서 언로의 확충을 논하다 체차되었다.
다음해인 1765년에 다시 대사간이 되었으나 초패(招牌: 왕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일)를 어기고 빈대(賓對: 매달 여섯 차례 입시하여 정사를 아뢰던 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흡곡현령(恰谷縣令)으로 좌천되었다가 곧바로 소환되어 예조참의가 되었다. 다시 승지에 특배되고, 1768년 대사간에 올랐다. 학식이 높고 직언을 잘 하였으며, 민생구제에도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