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흡곡현령,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수(季修)
  • 회계(廻溪)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 사망 연도1774년(영조 5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흡곡현령|예조참의
  • 출생 연도1716년(숙종 4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안승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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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흡곡현령,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계수(季修), 호는 회계(廻溪). 이만상(李萬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징룡(李徵龍)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덕윤(李德潤)이며, 어머니는 조의봉(趙儀鳳)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3년(영조 29) 진사가 되고, 175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757년 정언이 되고, 1761년 왕세손의 입학례를 행하고 좌익선(左翊善)이 되었다. 이후 누차 경연에 참여하여 왕을 보도하였다.

1762년 기우(祈雨)를 신중하게 할 것을 간하다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되거나 다음 관직이 제수될 때까지의 대기상태)되었다가 그 해에 독운어사(督運御史)로 북도에 파견되었다. 1763년에 수찬이 되고, 이후 부교리·교리를 거쳐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1764년 이 공으로 가자되고 승지에 올랐다. 이후 대사간으로 있으면서 언로의 확충을 논하다 체차되었다.

다음해인 1765년에 다시 대사간이 되었으나 초패(招牌: 왕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일)를 어기고 빈대(賓對: 매달 여섯 차례 입시하여 정사를 아뢰던 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흡곡현령(恰谷縣令)으로 좌천되었다가 곧바로 소환되어 예조참의가 되었다. 다시 승지에 특배되고, 1768년 대사간에 올랐다. 학식이 높고 직언을 잘 하였으며, 민생구제에도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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