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5책. 목판본. 간행경위는 상세히 알 수 없으며, 다만 1649년(인조 27)에 쓴 이민구(李敏求)의 서문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본집이 4책, 부록인 유고가 1책으로 되어 있는데 유고는 등사판이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본집의 권1∼4에 시 507수, 권5·6에 차(箚) 32편, 권7에 차(箚) 11편, 의(議) 9편, 권8에 제축문 15편, 유릉지(裕陵誌) 1편, 묘갈명 2편, 대행왕비시책문(大行王妃諡冊文)·신도비명·묘비명 각 1편, 묘지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고, 유고에는 시 206수와 잡저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형태별로 수록되어 있다.
감흥시나 영물시는 별로 없고, 송별시·증여시·차운시·만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중 만시가 제일 많은데, 개성적인 정감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사대부의 교양과 취미생활의 산물로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차는 대부분이 사직에 관한 것이고, 그 밖에 당시 임진왜란 후의 급격한 정세변화로 말미암아 야기된 여러가지 복잡한 정치문제와 관련된 것이 약간 있다.
「기유봉사(己酉封事)」는 그가 우의정으로 있을 때 광해군에게 임진왜란 이후의 현실적 문제들과 국가통치에 필요한 기술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내용의 골자를 살펴보면, 임금과 신하가 서로 힘을 합쳐 피폐된 경제를 재건하고 황폐한 농토를 개간하여 퇴폐적인 풍속을 교화와 선정으로 바로잡아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의 9편은 제목은 없으나 모두 그가 재상으로 있을 때 조정에서 논의되었던 크고 작은 문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인데, 그 가운데 중국으로 사신(使臣)을 보낼 때의 여러 어려운 점들에 대한 지적, 다섯 명의 현신(賢臣)에게 시호(諡號)를 내리는 문제의 조속한 해결 촉구 등에 관한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