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광주목사, 개성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광해군 때 후궁의 친척으로 아첨하여 총애를 받아 인사문제에까지 관여하여 무리한 일을 많이 자행하였고 탐욕스러웠다.
광주목사(光州牧使)가 되어서는 온 고을이 텅 비다시피 하였으며, 개성유수가 되어서는 탐독하기가 한이 없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멀리 도망가서 숨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뒤에 석방되었으나 유효립(柳孝立)의 옥사 때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1629년(인조 7) 양경홍(梁景鴻) 등과 역모에 가담하여 오랑캐에게 흉서를 보냈다는 것으로 몇 차례 심문을 받던 중 장살(杖殺)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