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자징(子澂). 임구(任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복(任復)이고, 아버지는 한성판관 임팽손(任彭孫)이며, 어머니는 양화(楊和)의 딸이다.
16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1년(연산군 7)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검교를 역임하였으나 부모봉양을 위해 횡성현감·포천현감으로 나갔다.
내직으로 옮겨 전적이 되어 윤대(輪對)에서 지방에 학장(學長)을 둘 것을 요청하였다. 그 뒤 은계찰방·도총부도사·중추부도사·군자감판관·봉상시판관·공조정랑·순천군수·군자시첨정 등을 거쳐 훈련원부정에 이르렀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아버지가 죽은 뒤 60세가 넘었으면서도 여막에서 3년을 지내고 절기 때마다 제사를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