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영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박사, 부수찬,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동해산인(東海散人), 소암(疎庵)
  • 무숙(茂淑)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623년(인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박사|부수찬|지평
  • 출생 연도1576년(선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박사, 부수찬,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초명은 상(湘). 자는 무숙(茂淑), 호는 소암(疎庵) 또는 동해산인(東海散人).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임열(任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창락찰방 임숭로(任崇老)이고, 아버지는 감역 임기(任奇)이며, 어머니는 승지 정유일(鄭惟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1년(선조 34)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10년 동안 수학, 논의가 과감하였으며 전후 유소(儒疏)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의 대책(對策)에서 주어진 이외의 제목으로 척족의 횡포와 이이첨(李爾瞻)이 왕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존호를 올리려는 것을 심하게 비난하였다.

이를 시관 심희수(沈喜壽)가 적극 취하여 병과로 급제시켰는데 광해군이 대책문을 보고 크게 노하여 이름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몇 달간의 삼사의 간쟁과 이항복(李恒福) 등의 주장으로 무마, 다시 급제되었다.

그 뒤 승문원정자·박사를 거쳐 주서가 되었다. 1613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무옥이 일어나자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정청(庭請)에 참가하지 않았다. 곧 파직되어 집에서 지내다가 외방으로 쫓겨나 광주(廣州)에서 은둔하였다.

인조반정 초에 복직되어 예문관검열과 홍문관정자·박사·부수찬 등을 거쳐 지평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고문(古文)에 힘썼으며, 중국 육조(六朝)의 사륙문(四六文)에 뛰어났다. 그가 지은 「통군정서(統軍亭序)」는 명나라 학자들로부터 크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택당집(澤堂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