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는 수립 초부터 운영상 어려움을 겪었는데, 더욱이 경제적인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였다.
이에 임시정부의 노동국총판(勞動局總辦)을 지낸 안창호(安昌浩)가 중심이 되어, 임시정부가 강화되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어야 국내외를 통할, 통치할 수 있다는 뜻에서 상해 프랑스조계(租界)에서 결성하였다.
위원장은 안창호, 서무주임은 조상섭(趙尙燮), 재무주임은 진희창(秦熙昌)이었으며, 군자금조달을 위하여 위원 6명을 두었는데 이들을 국내외에 파견하여 상당량의 군자금을 모금, 임시정부의 국무령(國務領) 김구(金九)에게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투탄의거에 연루되어 안창호가 체포됨으로써 더 이상 활동을 지속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