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필경(弼卿). 승지 임전(林전)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임유(林濡)이다.
1717년(숙종 43) 온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충청도에 거주하지 않았다 하여 방(榜)에서 빠졌다가 나중에 도내에 오래 거주함이 밝혀져 복과되었다.
1742년(영조 즉위) 정랑으로 소론 대신 유봉휘(柳鳳輝)와 어영대장 이삼(李森)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여 관직에서 쫓겨났다.
이듬해 지평으로 상소하여 소론 김일경(金一鏡), 남인 목호룡(睦虛龍) 일당의 국왕모해 사실을 밝힐 것과 김일경 역모사실이 반교문(頒敎文: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백성들에게 널리 반포하던 교서)을 지은 조태억(趙泰億)을 논핵하는 등 노론 언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정언으로 재해에 대한 상소에서 국왕이 공정한 마음을 가질 것, 곤궁한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 내수사 저축을 풀 것 등을 주장하였다. 1726년에는 헌납으로 대신에서 물러난 민진원(閔鎭遠)과 이관명(李觀命)의 서용과 국왕의 견제를 받는 노론 신세웅(申世雄) 등을 서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승지로 승진하였고, 죄를 줄 것을 청할 때 소론의 처벌을 주장하던 대간과 함께 관직이 교체되었다. 1728년 병조참지로 승진하여 이인좌난(李麟佐亂) 후 괘서에 언급된 국왕의 무고 사실을 밝힐 것을 주장하였다. 그 뒤 형조참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