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화실」, 「좌상」, 「만추」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개설
활동사항
1958년과 1959년에도 특선에 오름으로써 추천 작가가 되었고, 1963년부터는 초대 작가로 심사 위원이 되기도 하며 대표적인 국전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는 한편, 1955년의 대한미술협회전에서는 불상을 그린 유화 작품이 문교부장관상을 차지했다. 1961년에 광주의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74년에 정년 퇴임할 때까지 14년간 광주에 거주하며 두드러진 서정적 색채 화가로서의 작가상을 빛냈다.
그러나 그의 작품 발표와 미술계 활약은 줄곧 서울과 직결되어 있었다. 조선대학교에서는 선임 교수였던 오지호(吳之湖)처럼 색채 존중의 기법을 학생들에게 지도하여 자연주의 성향의 호남 서양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작품세계
1980년대 이후에는 그 성향이 더욱 자유롭게 추구되었고, 말년에는 표현을 최대한으로 단순화시킨 붓놀림과 명쾌한 선택의 색상으로 자연미의 생명감과 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강조하려고 하였다. 특출했던 색채적 표현주의 화가로서 각별한 평가와 많은 애호가들의 인기를 누렸으며, 그에 상응한 많은 역작을 남겼다.
화단 활동으로는 1958년의 목우회(木友會) 창립 회원, 1982년 이후에는 미술 단체 구상전(具象展) 가담 및 회장을 역임했다.
상훈
참고문헌
- 『한국근대회화선집(韓國近代繪畫選集)-박영선(朴泳善)·임직순(任直淳)』(금성출판사, 1990)
- 『임직순(任直淳)』(서울 현대화랑 1989)
- 『국전도록(國展圖錄』)(6∼30회)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