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집 (집)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승지, 대사간,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순(景純)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6년(숙종 22)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주요 관직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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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대사간,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순(景純). 임양(任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임윤원(任胤元)이고, 아버지는 승지 임수적(任守迪)이며, 어머니는 유이정(柳以井)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8년(영조 4)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지평·정언 등을 지냈다.

1741년 지평으로 국왕 부름을 거부하여 외직에 보임된 오광운(吳光運) 등을 구원하였고, 1743년에는 언로의 개방과 국왕의 수성(修省)을 주장하였으며, 곧 도당록(都堂錄)에 선발되었다. 1746년 교리로 국가에서 금하는 교단(校緞)을 몰래 가져온 재자관(齎咨官) 이명직(李命稷)의 처벌을 가벼이 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파직되었다.

1749년 장령으로 비변사 인견(引見: 왕이 신하를 불러서 봄)에 참석하여 중외 초기(草記: 정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간단히 기록한 것)를 지체시키지 말고 비변사에 즉시 회계할 것, 외방 옥사가 적체되지 않도록 할 것, 송사를 방해하는 수령을 논죄할 것 등을 주장하였으나 하찮은 사안으로 대간의 책임을 면하려 한다는 탄핵을 받았다.

이후 교리·겸필선·사간·응교·겸우익선·집의·응교 등을 지냈고, 1752년 존숭도감(尊崇都監)의 공로로 통훈대부에 올랐다. 곧 승지로 승진하여 혐의를 받고, 처치 규례를 두고 대간과 논란을 벌였으며, 대사간·도승지를 지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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