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순(景純). 임양(任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임윤원(任胤元)이고, 아버지는 승지 임수적(任守迪)이며, 어머니는 유이정(柳以井)의 딸이다.
1728년(영조 4)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지평·정언 등을 지냈다.
1741년 지평으로 국왕 부름을 거부하여 외직에 보임된 오광운(吳光運) 등을 구원하였고, 1743년에는 언로의 개방과 국왕의 수성(修省)을 주장하였으며, 곧 도당록(都堂錄)에 선발되었다. 1746년 교리로 국가에서 금하는 교단(校緞)을 몰래 가져온 재자관(齎咨官) 이명직(李命稷)의 처벌을 가벼이 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파직되었다.
1749년 장령으로 비변사 인견(引見: 왕이 신하를 불러서 봄)에 참석하여 중외 초기(草記: 정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간단히 기록한 것)를 지체시키지 말고 비변사에 즉시 회계할 것, 외방 옥사가 적체되지 않도록 할 것, 송사를 방해하는 수령을 논죄할 것 등을 주장하였으나 하찮은 사안으로 대간의 책임을 면하려 한다는 탄핵을 받았다.
이후 교리·겸필선·사간·응교·겸우익선·집의·응교 등을 지냈고, 1752년 존숭도감(尊崇都監)의 공로로 통훈대부에 올랐다. 곧 승지로 승진하여 혐의를 받고, 처치 규례를 두고 대간과 논란을 벌였으며, 대사간·도승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