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각

  • 역사
  • 유적
  • 고려 전기
  • 고려 후기
고려시대의 장서고.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심우준 (전 중앙대학교, 서지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시대의 장서고.

내용

이 각은 회경전(會慶殿 : 당시의 正殿)의 서쪽 회동문(會同門) 안에 있었으며, 수만권의 서적이 수장되어 있었다. 이 각은 전적을 열람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으며, 하나의 서고에 불과하였다.

도서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광선과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하였고, 유사시에는 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통로도 마련하였다. 여기에 수장되었던 장서는 1126년(인종 4) 2월에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의 난으로 궁궐이 불탈 때 함께 타버렸다.

인종은 궁궐이 불타버린 뒤 수창궁(壽昌宮) 옆에 있는 시중 소태보(邵台輔)의 집을 서적소(書籍所)로 삼고, 문서를 수집하게 하는 한편, 대사성 김부철(金富轍)과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 임완(林完)을 비롯하여 여러 유신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이 장서들은 22년 뒤에 보문각(寶文閣)에 부설된 문첩소(文牒所)로 이관된듯하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해동역사(海東繹史)』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