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흥(長興). 아버지는 임탁영(任卓英)이다.
일찍부터 의협스러운 기세가 있었고 궁마(弓馬)에 능하였는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작은아버지인 종묘영(宗廟令) 임발영(任發英)을 도와 묘주(廟主)를 받들고 피난가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1600년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으로 활약하다 1606년경 비인현감이 되었고, 그 뒤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따라 남한산성에 입보하였고, 이어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가 되었다.
다음해에 절충장군이 되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울산에 부임하였다. 이어서 가선(嘉善)·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고 도총부부총관이 되었다. 1644년 다시 경상좌도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하였으나 임지에서 1645년 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