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신지(身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828년(순조 2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의금부사|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748년(영조 2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우기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신지(身之). 형조참의 임순원(任舜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임수관(任守寬)이고, 생부(生父)는 임성(任城)이며, 어머니는 심득행(沈得行)의 딸이다. 임선(任琁)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91년(정조 15) 왕의 수원 환차(還次: 행차가 돌아옴) 때 유생과 무사를 시험보았는데, 유생 중 수석을 차지하여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는 혜택을 받았으며, 1794년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해 부수찬과 교리가 되었다.

이듬해 자전(慈殿)의 회갑연 때 경모궁(景摸宮) 친향대축(親享大祝)을 담당한 상으로 가자(加資)되었으며, 1798년에는 이천부사·승지를 거쳐 이조참의를 지냈으며, 1804년 예방(禮房)승지로 재직하면서 정순대비(貞純大妃)를 위한 상호도감(上號都監)에서 일한 공으로 가자되었다.

1813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에 갔다 왔으며, 이 후 여러 차례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1819년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1822년가순궁(嘉順宮)이 졸하자 원소제조(園所提調)가 되었으며, 곧 이어 부묘도감제조(祔廟都監提調)로서 활동하였다. 1823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그 뒤 한성부판윤·공조판서·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828년 지중추부사로 재직 중 죽었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