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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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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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3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내용

김준연(金俊淵)·소선규(蘇宣奎) 등이 중심이 되어 창당한 보수정당이다. 1963년 최고회의 의장의 4·8성명으로, 그 해 5월 초부터 전 자유당계·전 민주당계·민정당계는 범국민정당운동을 전개하고 민주공화당과의 합류를 모색하였으나, 그 반응은 냉담하였다.

그 가운데 초기의 친여적 태도에서 급선회하여 민정당을 탈당한 소선규 등의 참여로 7월 1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창당준비활동중 민주공화당과의 합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두 당의 합류조건 및 박정희(朴正熙) 의장에 대한 지지여부 등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로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구 민주당계인 엄민영(嚴敏永) 등 합류파는 이탈하고, 창당준비위원장 소선규 등을 중심으로 한 주류 고수파는 독자적인 창당방침을 세우고 송요찬(宋堯讚)·김재춘(金在春) 등을 입당시켜 마침내 1963년 9월 3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때 대표최고위원에 김준연, 최고위원에 송요찬·소선규·김재춘·김봉재(金奉才)를 추대하였다.

당의 정강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와 경제체제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창당 후 첫 상무위원회의에서 전 내각수반인 송요찬 최고위원을 제5대 대통령후보로 지명하였으나, 야당후보 단일화를 위하여 사퇴하였고, 이어서 창당의 산파역을 맡았던 김재춘 최고위원이 돌연 정계를 은퇴함에 따라 지도체계에 동요가 보였다.

그러나 민정당 전 최고위원 김도연(金度演)과 전 민의원부의장 서민호(徐珉濠) 등이 입당함에 따라 당세를 정비하고 김도연을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하여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대비하였다. 선거 결과 지역구후보 117명 중 6명, 전국구 3명이 당선되어 모두 9명이 원내에 진출하였으나 단독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는 못하였다.

이에 따라 1963년 12월 민주당·국민의 당과 연합하며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삼민회라는 이름으로 원내·원외 활동을 전개하면서 3당 합당문제를 절충하였으나, 완전한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 가운데 민주당과 국민의 당이 통합됨에 따라 자유민주당은 제1야당인 민정당과의 통합을 모색하여 1964년 11월 26일 민정당에 흡수, 합당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정당사』1(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집필자
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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