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월 6일 윤보선(尹潽善)·박기출(朴己出)·장준하(張俊河) 등이 중심이 되어 창당하여 1972년 10·17 대통령특별조치로 활동이 중단되기까지 존립하였다. 1970년대 초의 정국은 여당인 공화당과 야당인 신민당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이 정치 상황에 대하여, 공화당 정권 10년의 치적은 표면적인 현상이고 본질은 일부의 특권 부패분자 및 매판자본세력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고, 중심 야당도 공화당통합체의 일부로 국민 여망을 축소·왜곡시켰다고 비판하여, 기존의 양당제도를 재편하기 위한 신당운동을 전개하는 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들 세력은 윤보선을 중심으로 하여 1970년 5월 6일 민주통일국민회(가칭) 발기준비위원회를 열어, 위원장 유정기(柳正基)를 선출하고 신당 창당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준비위원장 유정기가 이 해 6월 2일 사퇴하고, 다시 18일에 국민당(가칭) 발기인대회가 열려 창당준비위원장에 윤보선, 부위원장에 조한백(趙漢栢)·김상돈(金相敦)을 선출한 뒤, 1971년 1월 6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총재 밑에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정무회의를 두는 단일지도체제를 당헌으로 채택한 국민당은 윤보선을 총재로 선출하였다.
주요 정책은 대미 일변도 외교의 지양과 다변적 외교노선의 추구, 한일간의 무역불균형 시정과 비동맹국 및 준적성공산국들과의 무역통상관계의 확대·강화, 외자 일변도의 고도성장정책하에서 온 경제적·사회적 불균형의 시정, 독과점 배제에 의한 유효경쟁체제의 확립과 중소기업의 수출특화산업으로의 전환, 매스컴의 정권 유지 도구화를 지양하고, 국민여론을 오도하는 문화·교육정책을 철폐하며, 국민정신과 민족 이상의 방향을 정립시키는 민족교육을 문화·교육 정책의 기본으로 한다는 것 등이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윤보선이 출마를 수락하지 않자, 선거 참여문제에 대한 당내 의사를 통합하지 못한 채 박기출이 독자적으로 출마하였으나 4만3753표 획득에 그쳐 낙선하였다. 제8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지역구 121명, 전국구 14명을 공천하였으나 1명만이 당선되었다.
이처럼 군소 정당으로 머문 국민당은 이듬해 10월 17일 대통령특별선언으로 정치활동을 중지당하여 자연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