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부산 출신. 동래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히로시마[廣島]의 고등공업학교를 마친 뒤 동경의학전문학교(東京醫學專門學校)를 거쳐 1942년구주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에서 병원을 개업하였고, 광복 뒤, 민족자주연맹과 통일독립연맹 경남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관여하면서 1956년조봉암(曺奉岩)과 진보당(進步黨)을 결당, 부위원장이 되었다.
진보당의 사회민주주의 정치노선이 제1공화국의 탄압을 받으면서 이른바 ‘진보당사건’에 연루, 징역 20년의 구형을 받았으나 제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6개월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제2공화국 때 입후보자난동사건에 연루되어 1년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5·16군사정변 뒤 민정당(民政黨)·국민당·신민당(新民黨)에 가담하였으며, 제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신민당 공천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 국민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섰으나, 4만 3753표로 낙선하였다. 1973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벽촌의 보건소 의사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였다. 대한의학협회 회장·경상남도의사회 회장직 외 경상남도체육회장·한글동학회 회장·새한학회이사장·민족통일문제연구원이사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