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백 ()

목차
정치
인물
해방 이후 체신부장관, 신민당 지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97년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체신부장관, 신민당 지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내용

전라북도 김제 출신. 별호는 월촌(月村). 1929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를 역임하였다. 1951년 국민대학 정치과를 졸업하고, ≪대동신문≫ 전북지사장을 지낸 뒤 정계에 입문하여 제헌 4·5·7대 의원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제헌의회 때에는 김제 갑구에서 무소속으로, 1958년 4대와 1960년 5대에는 김제 갑구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으며, 1967년 7대에는 성동 갑구에서 신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였다.

1949년 2월 한국민주당을 해체시키고 1951년에 발족한 민주국민당의 조직부장을 지내고, 이듬해는 농민부장을 역임하였다. 그 뒤 1955년에 발족한 통합야당 민주당의 전당대회의장·훈련부장·산업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제헌동지회 부회장을 지냈다. 이어 국제친선문화협회 회장을 지냈고, 1963년 민정당(民政黨) 사무장을 지냈으며, 1966년 선명 야당을 기치로 창당한 신한당(新韓黨)의 전당대회 의장이 되었다.

이듬해 민중당과 신한당의 합당으로 결성된 통합 야당인 신민당의 운영위원 겸 운영회의 부의장이 되었고, 신민당 서울 제5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1968년에는 신민당 지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민주당 정권 시절인 1960년 9월부터 1961년 1월까지 체신부장관을 지냈다. 1969년 5월 21일 열린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유진오(兪鎭午) 총재의 지명에 의해 비주류 몫으로 할당된 부총재 4인 가운데 한 인사로 유진산(柳珍山, 수석부총재), 정일형(鄭一亨), 이재형(李載灐)과 함께 선임되었으나 유진산 등의 주류에 반발하여 1970년부터 윤보선(尹潽善) 등과 함께 ‘선명야당’을 기치로 신당 준비운동에 나섰다.

1971년 1월 5일 신민당 탈당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으며, 그 해 4월윤보선을 중심으로 국민당을 창당하였다. 그러나 국민당은 1971년 4월 27일 대통령 선거에 윤보선이 후보지명을 고사하였고, 5월 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1인을 제외하고 모두 낙선하는 등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잠시 체신부장관을 역임한 것을 제외하고는 일생 동안 야당생활을 하였던 호남 출신의 정치인이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역대국회의원총람』 전2권(국회사무처, 1977∼1993)
『대한민국정당사』 제1집(1945∼1972)(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대한민국선거사』 제1집(1945∼1972)(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집필자
이완범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