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장곡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불화. 1708년(숙종 34년) 작.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373㎝, 가로 263㎝.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지국천왕(持國天王) 등에 마멸이 있으나 그밖에는 깨끗하게 남아 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보살·6비구, 제석(帝釋)과 범천(梵天), 4구의 타방불(他方佛), 사천왕 및 2구의 신장(神將) 등이 둘러싼 원형 구도가 완전히 정착된 군도식(群圖式) 구도법으로 우수한 작품에 속한다.
낮은 대좌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은 움츠린 듯한 자세로 키형 광배[箕形光背]를 지녔다. 육계가 높은 나발의 머리에 반타원형의 중앙 계주(中央髻珠)와 둥근 정상 계주가 표현되었다. 얼굴은 신체의 비례에 비하여 크다. 손 모양은 조선 후기 아미타불상의 통례를 따르고 있으나 엄지와 중지를 맞댈 듯 멋을 부렸다.
통견(通肩)의 법의 안에 군의(裙衣)를 묶은 흰 띠가 대좌 앞으로 길게 늘어졌다. 이는 조선조 불화에 새롭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의대(衣帶)이다. 특히, 내·중·외로 구분된 키형 광배 안의 불꽃무늬 외에도 머리 좌우에서 5줄기로 뻗친 흰 광명은 1476년 무위사 아미타삼존벽화의 정상 계주에서 피어오르는 두 줄기의 광명이 옆으로 길게 와운문(渦雲文)을 형성한 것과 비교된다.
원형 두광(頭光)을 지닌 8보살은 법의와 유사한 옷을 입거나 상의(裳衣) 위에 천의(天衣)를 걸쳤다. 이들을 나타내던 지물(指物)이나 보관에 그려지던 표시가 점차 사라지고 모두 합장하거나 연꽃을 든 자세로 변하였다. 그래서 위치만으로 8보살의 정확한 명칭을 가려내기가 어려워진다.
보병을 얹은 연꽃을 든 관음보살, 경책(經冊)을 얹은 연꽃을 든 대세지보살, 연꽃만을 든 문수와 보현 보살, 합장한 금강장과 제장애 보살, 역시 연꽃을 든 미륵보살과 짝을 이룬 지장보살은 통식대로 보주(구슬)와 석장(錫杖 : 중이 짚는 지팡이)을 짚었다. 그리고 민머리(승려 머리)가 비치는 투명한 연분홍색 두건을 머리에 쓰고 있어 조선 초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피모지장(被帽地藏)이 유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적색과 녹색이 주조색이다. 그러나 밝고 온화한 홍색 위주의 엷은 채색을 하였기 때문에 가늘고 유려한 필선이 드러나 보인다. 고려 불화에 빈틈없이 장식되던 금채(金彩)는 옷 문양 등에만 조금 사용되었을 뿐이다.
주색(朱色)을 칠하여 따로 마련한 화기란(畫記欄)을 보면, 첫머리에 전하의 수만세(壽萬歲)를 빌면서 수십 명의 서민들이 시주해서 화원인 인문비구(印文比丘) 등이 그렸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귀족들이 발원하던 고려 불화와는 달리 조선시대에 이르면 서민층도 상당히 참가하고 있어 불교가 크게 대중화된 것을 이 불화를 통해서 분명히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비구는 1년 후 충청북도 영국사대웅전영상회상도를 그린 화원이다. 이 두 작품은 유파별로 지방적인 특색을 암시해 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