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석정(石正). 강원도 영월 출신. 러시아 자유시에서 무장독립부대 통합을 위해 조직된 전한군사위원회(全韓軍事委員會, 이칭: 한인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하였다.
그 해 상해임시정부에서 안창호 · 김구의 권유를 받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30년 버틀러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인디애나주립대학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며 학업을 계속하였다.
1932년 겨울 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독립자금을 모금하고, 교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 봄 구미위원부는 미국과 일본간의 전쟁이 확대되자 한미공동전투활동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그를 비롯한 재미한국청년들을 미국방성 전략국(OSS)에 추천하여 정보 · 통신 등 특수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미군에 자원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동안 충칭(重慶)에 있는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1948년 강원도 영월에서 무소속으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그 해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49∼1952년까지 체신부장관, 아시아반공대회 한국대표(1956∼1960),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 사장(1957∼1960), 서울특별시장(1960) 등을 지냈다.
그 뒤 정당활동을 재개하여 1967년 신민당 운영위원, 1971년 국민당 사무총장, 민중당 총재를 지냈다. 저서는 『우익정당의 단합론』 · 『우익정당의 갈 길』이 있다. 1990년 독립운동 공로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