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군 ()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장단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장단 부분
인문지리
지명
경기도 서북부에 위치한 군.
정의
경기도 서북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연천군, 서쪽은 개풍군, 남쪽은 파주군, 북쪽은 황해도 금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34′∼126°53′, 북위 37°49′∼38°13′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724㎢, 인구 6만 8,293명(1937년 현재)이다. 10개 면 67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장단면 도라산리이다.

자연환경

마식령산맥의 여맥이 뻗어 내려 대체로 산지가 많다. 북부는 수룡산(秀龍山, 717m)·대둔산(大屯山, 760m) 등이 솟아 비교적 높지만, 남부는 구릉성 산지를 이루어 평탄하다. 북동부의 사미천(沙尾川)이 장남면에서, 남부의 사천(砂川)이 장단면에서 각각 임진강으로 유입, 그 유역에는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임진강은 곡류하며 흐르는데, 장단면의 하안(河岸)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어, 좁은 하안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연평균 기온은 10.4℃, 1월 평균 기온 -6.2℃, 8월 평균 기온 25.3℃이며, 연 강수량은 1,184.8㎜이다.

역사

고대

이 지역은 내륙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임진강이 남단을 경계하고 있어서 선사 시대부터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장단면 백학리에서 신석기 시대의 석기가 출토된 바 있고, 인근 지역인 파주군의 주월리·가월리 등지에서도 최근 뗀석기가 발견되고 있어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 시대에는 습천군(濕川郡)으로 불리다가,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에서 장천성현(長淺城縣) 또는 장성(長城)·야성(夜城)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인 757년(경덕왕 16) 현재의 지명인 장단으로 개칭하여 우봉군(牛峰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995년(성종 14)에 송림(松林)·임진(臨津)·임강(臨江)·토산(兎山)·적성(積城)·파평(坡平)·마전(麻田)·정주(貞州)·덕수(德水)·강음(江陰) 등과 같이 적현(赤縣)·기현(畿縣)으로서 개성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1001년(목종 4)에는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의 고향이라 하여 단주(湍州)로 승격하여 지주사(知州事)의 부임지가 되기도 하였다. 1018년(현종 9) 다시 현령으로 환원되어 송림·마전 등의 7개 현을 관리하게 되면서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직할이 되었다.

1062년(문종 16) 다시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의 관장하에 들어갔다. 예종 때에 세력을 크게 떨치다가 이자겸(李資謙)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 죽음을 당하였던 한안인(韓安仁)이 이곳 출신이다.

조선

1410년(태종 10) 송림현을 폐합하였고, 1414년임강현이 혁파되면서 장단으로 개칭되었다. 같은 해에 다시 송림·임강현으로 분리되었다가 재편되어 임진현에 병합되면서 임단현(臨湍縣)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419년(세종 1) 다시 송림·임강현이 분리되어 장단현이 되었다. 그 뒤 1456년(세조 2)장단·임강 두 현이 임진현에 속하였다가 임강현·임진현을 영구히 폐합하였다.

장단현은 세조 때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尹氏)의 선영이 있는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지군사(知郡事)를 배치하면서 치소를 도원역(桃源驛)으로 이전하였다.

도원역의 치소는 1469년(예종 1) 이곳에 진(鎭)이 설치되면서 다시 승격하여 도호부로 지정되었으며, 강화도호부를 비롯하여 풍덕(風德)·삭녕(朔寧)·마전·연천·교동·양현에 이르는 6개 현을 관리하게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방어사를 겸하면서 부치(府治)는 백악산(白岳山) 남방인 옛 임진현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1866년(고종 3) 일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부로 복구되었다.

근대

1895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장단군으로 개칭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의 진위대(鎭衛隊) 해산으로 의병의 투쟁이 강력하게 전개되었는데, 이 지방 출신인 김수민(金秀敏)은 1907년 의병을 일으켜 13도총도독이 되었다.

그는 2,000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덕음동에 군량을 비축하면서 보부상을 모집, 정보대를 편성함으로써 적정을 정탐하게 하였다. 아울러 부호들의 양곡을 징발하여 군용에 충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군비를 강화하였는데, 1907년 11월 17일에는 개성 수비대를 습격, 선전하였으며, 20∼30명으로 편성된 유격대로 4월 16일에는 구화장헌병분견소(九化場憲兵分遣所)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김수민 의병장은 장단·풍덕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더욱 효과적인 의병 투쟁을 위하여 1908년 차부(車夫)로 변장하고 서울로 들어가려다 체포되어 12월 17일 순국하였다.

그 뒤에도 강기동(姜基東)·서상렬(徐相烈)·연기우(延起雨)·김진묵(金溱默)·하상태(河相泰)·이능곤(李能坤)·유진부(柳振敷) 등의 의병장들이 장단·고랑포를 중심으로 계속 기의(起義)함으로써 구국 투쟁의 선봉 역할을 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진남면에서 500명, 장단면에서 700명이 참가한 만세운동이 3월 26일에 있었고, 3월 29일 진서면 시위, 4월 1일 구산면사무소 습격, 4월 4일 장도면과 대남면 시위, 4월 8일 고랑포 시위 등의 활동이 전개된 바 있다.

유물·유적

이 군은 고려 왕조의 수도였던 개경과 이웃하여 때로는 지역 경계가 넘나들기도 하였던 까닭에 고려 시대의 왕릉을 비롯한 고적들이 분포되어 있다.

호로고루지(瓠蘆古壘址)는 삼국 시대의 성지로서 장남면 원당리재미산(財尾山)과 임진강의 대안(對岸)인 연천군 적성면 장좌리의 작은 언덕 사이에 동서로 맞서고 있다.

임진강의 동쪽에 접하여 재목암(材木巖)의 연변(緣邊)으로서 단애를 이루는 위쪽이 평연한 대지이다. 왕릉으로는 장남면 고랑포리(현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신라의 경순왕릉이 있다. 왕릉의 비석은 조선 영조 때 발견되었다.

이 밖에 진서면 경릉리에 고려문종의 능인 경릉(景陵)이 있고, 진서면 눌목리에 고려숙종의 능인 영릉(英陵)이 있으며, 장도면 두매리에 고려명종의 능인 지릉(智陵)이 있다.

인조반정 때 장단부사 이서(李曙)와 부인의 애화가 얽힌 덕진당지(德津堂址)는 동파적벽(東坡赤壁) 위에 있었던 작은 당우였다. 강상면 율랑리에 삼국 시대의 고찰로 전하여지는 심복사(心腹寺)가 있다. 절 부근에는 고려 이후의 명문의 묘소가 많이 있다. 진서면 대원리 화산동에 1349년(충정왕 1)에 창건된 화장사(華藏寺)가 있다.

《동국여지승람》 장단도호부 불우조(佛宇條)에 의하면 군내에 극락사(極樂寺)·창화사(昌化寺)·영통사(靈通寺)·흥성사(興聖寺)·성등암(聖燈庵)·낙산사(洛山寺)·안적사(安積寺)·증각사(證覺寺) 등의 많은 절들이 산재하여 있었다고 한다.

교육·문화

옛 교육기관으로는 군내면에 장단향교가 있었으며 많은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향교의 학생 수는 부·목에 90명, 도호부에 70명, 군에 50명, 현에 30명이며, 본 군은 도호부로서 70명의 학생이 있었다. 서당도 지방 여러 곳에 67개소나 설치되어 학문을 전수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향교의 교육 기능이 약화되고 서원이 설립되어, 1650년(효종 1)에 임강서원(臨江書院)이 창건되고, 1694년(숙종 20)에는 사액(賜額)되어 고려 중찬(中贊) 안유(安裕), 한산백(韓山伯) 이색(李穡), 좌찬성(左贊成) 김안국(金安國), 예조참판 김정국(金正國)을 배향하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군내면에 장단공립보통학교가 처음 설립되었고, 그 뒤 각 면에 고랑포·구화·위천·진남·소남·장도·대강·진서·진동·대남·군내·장단동(長湍東) 등의 공립보통학교와 일본인들이 주로 취학한 고랑포와 동장(東場) 공립심상소학교가 설립되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서울·개성과 인접하여 초등 교육을 이수한 뒤에는 경제적인 사정에 따라 이들 지역으로 유학하였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장단공립농업실수학교만이 있었다. 194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0개교가 있다. 이곳은 고려송도의 교외 지역이었던 관계로 대부분의 문화 및 생활 풍습이 송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예로부터 지형적인 특수성으로 인하여 산악 지대인 동북 방면과 평야 지대인 서남 방면의 생활양식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산업·교통

임진강·사천 등의 하천 유역에 형성된 낮은 하안 평야에서는 벼농사가 행해지고 구릉 지대에서는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특히, 장단콩은 품질이 매우 우수하여 잘 알려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밀 등이며, 특산물로는 개성과 인접하여 인삼이 재배되고 있다. 가내공업으로는 양잠업이 성하여 장단주(長湍紬)가 생산되고, 그 밖에 도자기·대리석·주물 등도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경의선과 국도인 경의가도가 군의 남부를 통과하며, 지방도로가 연천∼장단, 개성∼장단, 장단∼삭녕 등 각 지방을 연결하고 있다. 특히, 장단은 경의선의 주요 역이며, 행정·교통·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임진강은 예로부터 주요 내륙 수로로 이용되어 주운(舟運 : 배로 화물을 나르는 일)이 발달하였다. 멀리 마식령산맥에서 발원하지만 주운이 편리한 곳은 고랑포부터이며, 상고랑포·하고랑포·석포(石浦)·수천포·석포(席浦) 등의 많은 하항이 발달하였다. 특히, 고랑포에는 지방 산물이 집산하며, 대부분이 배를 이용하여 타 지역으로 수송되었다.

주요 관광지로는 장남면 장단석벽(長湍石壁)이 유명하다. 이곳은 고랑포 부근의 임진강 연안 일대를 가리키는데,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강안석벽이 병풍을 두른 듯 멀리 마전(麻田)·적성(積城) 방면으로부터 장단에 이르기까지 20여 리나 계속된다.

하류로 내려가면 그 일부인 동파석벽이 있는데, 소식(蘇軾)이 놀던 적벽과 흡사하다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강물과 절벽의 꽃, 단풍 등이 어우러져 훌륭한 경치를 이루고 있다.

그 밖에 진서면 대원리의 화장사·강상면 솔랑리심복사 등의 사찰과 신라 경순왕릉, 고려문종·숙종·명종 등의 왕릉과 유명한 판문점이 진서면에 있다.

읍·면

강상면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9,158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화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강서면(江西面)과 강북면(江北面)이 1930년 강상면(江上面)으로 병합되었다.

북서쪽은 원통산(元通山, 430m) 등의 산지가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이 남동쪽으로 뻗어 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하천 평야의 발달은 미약하며,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콩·팥·조·맥류 등이다. 교통은 장단∼삭녕 간의 도로가 통과하며, 대강·연천군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유적으로는 솔랑리의 심복사지와 구층탑, 덕적리의 성불사지(成佛寺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구화(九化)·마성(馬城)·덕적(德積)·갈운(葛雲)·임강(臨江)·자하(紫霞)·솔랑(率浪) 등 7개 이가 있다.

군내면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5,776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진현내면(津縣內面)과 진북면(津北面)이 1930년 군내면(郡內面)으로 병합되었다.

북쪽은 백학산(白鶴山, 229m) 등의 산지가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100m 내외의 구릉 성산지를 이룬다. 사천이 면의 서부를 남류하며, 임진강은 면의 남동부를 흐르다가 장단면으로 들어간다.

사천 유역에는 비옥한 평야가 발달하여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특산물은 면화·양잠·인삼 등이다.

교통은 경의가도와 장단∼삭녕 간의 도로가 통과하며, 장단·진동·진서·파주·개풍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유적으로는 덕진산성지(德津山城址), 방목리의 조선 시대 우의정 조경(趙璥)의 묘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읍내(邑內)·점원(點元)·방목(芳木)·정자(亭子)·백련(白蓮)·송산(松山)·조산(造山) 등 7개 이가 있다.

대강면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5,089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청정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강남면(江南面)과 대위면(大位面)이 대강면(大江面)으로 병합되었다.

서쪽은 200m 내외의 구릉지가 이어져 있으며, 그 여맥이 동쪽으로 뻗어 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사미천이 남류하면서 작은 지류와 합류한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맥류 등이며, 특산물로는 면화 등이 있다.

교통은 장단∼삭녕 간의 도로가 통과하며 강상·장도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독정리의 초석·기와 등으로 보아 대사찰로 인정되는 이름 미상의 사찰지, 나부리의 고려 시대 정승 강시(姜蓍)의 묘, 천연기념물인 우근리의 은행나무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청정(靑廷)·나부(羅浮)·포춘(浦春)·우근(禹勤)·독정(篤正) 등 5개 이가 있다.

대남면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6,873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위천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되었으며, 1930년 변경 없이 그대로 대남면(大南面)으로 되었다.

동쪽은 원통산, 서쪽은 대개산(大蓋山, 577m), 북쪽은 수룡산 등의 산지가 솟아 있다. 지형적으로 수룡산과 대개산을 잇는 산줄기는 이 면의 분수령을 이루며, 북쪽은 구연천(九淵川)의 지류가, 남쪽은 사미천이 흐른다. 하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보리·밀·조 등이며, 특산물은 면화·대마 등이다.

교통은 장좌리를 중심으로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장좌리와 석재리 일대의 백치성(白峙城), 성재산(城載山)의 산성지, 석간동(石間洞)의 반신나체좌불상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위천(渭川)·성곡(聖谷)·석촌(石村)·장좌(長佐)·가곡(佳谷) 등 5개 이가 있다.

소남면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인구 6,215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유덕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되었으며, 1930년 변경없이 그대로 소남면(小南面)으로 되었다.

동쪽은 대개산, 서쪽은 월양산(月陽山, 578m), 남쪽은 화장산(華藏山, 560m)·배릉산(裵陵山, 392m), 북쪽은 대둔산(大屯山, 760m) 등의 산지가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를 이룬다.

월양산 줄기가 면의 중앙부를 동서방향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와, 면의 분수령을 이루어 오조천(吾助川)이 흐르는 서북부 분지와 사미천이 흐르는 남부 분지로 나누어진다. 이들 분지는 소규모이나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콩·보리·밀·조 등이다. 홍화리의 광산에서는 금·은·아연 등이 채굴된다. 교통은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유덕리의 이름 미상의 왕릉, 홍화리의 홍화사지(弘化寺址), 두곡리의 천황사지(天皇寺址), 지금리의 고려 시대 문하시중 문충공 이제현(李齊賢)의 묘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유덕(有德)·지금(知琴)·홍화(弘化)·박연(朴淵)·두곡(斗谷) 등 5개 이가 있다.

장남면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5,742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랑포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고남면(古南面)·장현내면(長縣內面)·장서면(長西面)의 관송리·반정리가 1930년 장남면(長南面)으로 병합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은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사미천이 면의 동부를 남류하다가 임진강으로 유입된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발달하여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며,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특산물은 면화·양잠·인삼 등이다.

교통은 장단∼연천 간의 도로가 통과하며, 진동·연천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또한, 고랑포를 중심으로 임진강을 이용한 주운(舟運)이 발달하였다.

문화유적은 원당리의 호로고루지, 고랑포리의 경순왕릉·장단석벽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고랑포(高浪浦)·원당(元堂)·반정(伴程)·판부(板浮)·자작(自作) 등 5개 이가 있다.

장단면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8,831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라산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상도면(上道面)·하도면(下道面)·중서면(中西面)이 1930년 진남면으로 병합되었으며, 1934년 장단면(長湍面)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중앙부는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그 밖에 대부분의 지역은 평야 지대를 이룬다. 임진강이 면의 동남부를 흐르다가 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유입된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특산물은 면화·대마 등이다. 특히, 콩은 품질이 우수하여 연천과 함께 장연대두라 하여 국제시장에서도 거래되었다.

교통은 경의선이 북부를 동서로 통과하며, 장단역이 설치되어 있다. 장단역을 기점으로 군내면 읍내리를 경유하여 고랑포·구화장 등을 잇는 도로가 통과하며, 군내·파주·개풍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도라산리의 봉수지(烽燧址), 거곡리의 고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도라산(都羅山)·동장(東場)·노상(蘆上)·노하(蘆下)·서장(西場)·정동(井洞)·덕산(德山)·거곡(巨谷)·석관(石串)·강정(江井) 등 10개 이가 있다.

장도면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인구 7,822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읍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동도면(東道面)·서도면(西道面)·장북면(長北面)이 1930년 장도면(長道面)으로 병합되었다.

서쪽은 대덕산(大德山, 237m) 등의 산지가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100∼200m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하천의 발달은 미약하여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콩·팥·조·보리 등이며, 특산물은 면화·양잠·인삼 등이다.

교통은 장단∼삭녕 간의 도로가 통과하며, 강상·대강·진동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하리의 고려시대 우정승 한악(韓渥)의 묘, 고읍리의 조선시대 우의정 이지연(李止淵)의 묘, 옛 천연기념물인 사시리의 느티나무, 두매리에 지릉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고읍(古邑)·사시(沙是)·석주원(石柱院)·중(中)·상(上)·하(下)·오음(梧陰)·항동(項洞)·매현(梅峴)·두매(杜梅) 등 10개 이가 있다.

진동면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4,971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포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진동면·당서면의 초리·용산리가 1930년 진동면(津東面)으로 병합되었다.

남쪽은 일월봉(日月峰, 191m) 등의 산지가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임진강이 면의 동남부를 흐르다가 군내면으로 유입된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 등이며, 특산물은 면화·양잠·인삼 등이다.

교통은 장단∼삭녕, 장단∼연천 간의 도로가 통과하는 분기점이며, 군내·장남·장도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하포리의 조선시대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정곤수(鄭崑壽)의 묘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하포(下浦)·동파(東波)·서곡(瑞谷)·초(哨)·용산(龍山) 등 5개 이가 있다.

진서면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7,225명(1930년 현재). 면 소재지는 눌목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송남면(松南面)과 송서면(松西面)이 진서면(津西面)으로 병합되었다.

동쪽은 반룡산(盤龍山, 241m), 남쪽은 백학산, 북쪽은 화장산 등의 산지가 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 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1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사천이 면의 서남부를 남류하다가 군내면으로 유입된다. 하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며,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맥류·감자 등이며, 특산물은 인삼 등이다.

교통은 경의가도와 개성∼고랑포 간의 도로가 통과하며, 군내·개풍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나, 면의 북부는 도로시설이 미비한 상태이다.

문화유적은 경릉리의 경릉·불일사지(佛日寺址)와 6층석탑·사리탑·석불, 눌목리의 영릉과 고분, 대원리의 화장사와 7층석탑·사리탑·대원사지(大院寺址)·천화사지(天和寺址)·산성지, 전제리에 75개의 고분, 고려시대 문하시중 염제신(廉悌臣)의 묘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눌목(訥木)·분지(芬芝)·금릉(金陵)·어룡(魚龍)·경릉(景陵)·전제(田齊)·선적(仙跡)·대원(大院) 등 8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1945년 8·15광복 후 국토분단으로 인하여 이 지역은 북한으로 들어가 미수복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사변 때 미군 해병대와 중공군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베가스(Vegas)고지 전투와 고랑포 전투 등은 휴전을 앞둔 상태에서 전개되었던 유명한 공방전 가운데 하나이다.

1945년 11월 장단군의 5개 면과 개풍군의 2개 면을 합쳐서 장풍군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장단군의 일부 지역이 판문군으로 되었고, 1949년 장단면·군내면·진동면·장남면·진서면이 남한 지역이 되고, 대강면·강상면·대남면·소남면·장도면이 북한 지역이 되었다. 1962년에는 일부 지역이 파주군·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52년 12월에 북한 지역의 일부가 다시 금천군으로 분리되었다.

1954년 10월 개풍군과 판문군이 신설된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고, 1960년 3월 판문군과 함께 개성시에 편입되었다. 1961년 3월 강원도 철원군에 속해 있던 석둔·솔현·냉정·가천·귀존·장학 등 6개 이가 장풍군에 흡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 장단군 소남면 일대가 황해북도 금천군으로 분리되었고, 진서면 일대가 판문군으로 분리되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장단군지』(장단군지편찬위원회, 1986)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85)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경기도지』(경기도지편찬위원회, 1979)
『경기도사』1(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74)
『경기도향토교육자료지』역사편(경기도교육위원회, 1956)
집필자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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