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식령산맥의 여맥이 뻗어 내려 대체로 산지가 많다. 북부는 수룡산(秀龍山: 717m), 대둔산(大屯山: 760m) 등이 솟아 비교적 높지만, 남부는 구릉성 산지를 이루어 평탄하다. 북동부의 사미천(沙尾川)이 장남면에서, 남부의 사천(砂川)이 장단면에서 각각 임진강으로 유입하며, 그 유역에는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임진강은 곡류하며 흐르는데, 장단면의 하안(河岸)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어, 좁은 하안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연평균 기온은 10.4℃, 1월 평균기온 -6.2℃, 8월 평균기온 25.3℃이며, 연 강수량은 1,184.8㎜이다.
이 지역은 내륙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임진강이 남단을 경계하고 있어서 선사시대부터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장단면 백학리에서 신석기시대의 석기가 출토된 바 있고, 인근 지역인 파주시의 주월리 · 가월리 등지에서도 최근 뗀석기가 발견되고 있어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에는 습천군(濕川郡)으로 불리다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에서 장천성현(長淺城縣) 또는 장성(長城) · 야성(夜城)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인 757년(경덕왕 16) 현재의 지명인 장단으로 개칭하여 우봉군(牛峰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995년(성종 14)에 송림(松林) · 임진(臨津) · 임강(臨江) · 토산(兎山) · 적성(積城) · 파평(坡平) · 마전(麻田) · 정주(貞州) · 덕수(德水) · 강음(江陰) 등과 같이 적현(赤縣) · 기현(畿縣)으로서 개성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1001년(목종 4)에는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의 고향이라 하여 단주(湍州)로 승격, 지주사(知州事)의 부임지가 되기도 하였다. 1018년(현종 9) 다시 현령으로 환원되어 송림 · 마전 등의 7개 현을 관리하게 되면서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직할이 되었다. 1062년(문종 16) 다시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의 관장하에 들어갔다. 예종 때에 세력을 크게 떨치다가 이자겸(李資謙)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 죽음을 당한 한안인(韓安仁)이 이곳 출신이다.
1410년(태종 10) 송림현을 폐합하였고, 1414년 임강현이 혁파되면서 장단으로 개칭되었다. 같은 해에 다시 송림 · 임강현으로 분리되었다가 재편되어 임진현에 병합되면서 임단현(臨湍縣)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419년(세종 1) 다시 송림 · 임강현이 분리되어 장단현이 되었다. 그 뒤 1456년(세조 2) 장단 · 임강 두 현이 임진현에 속하였다가, 임강현 · 임진현을 영구히 폐합하였다.
장단현은 세조 때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의 선영이 있는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고, 지군사(知郡事)를 배치하면서 치소를 도원역(桃源驛)으로 이전하였다. 도원역의 치소는 1469년(예종 1) 이곳에 진(鎭)이 설치되면서 다시 승격하여 도호부로 지정되었으며, 강화도호부를 비롯하여 풍덕(風德) · 삭녕(朔寧) · 마전 · 연천 · 교동 · 양현에 이르는 6개 현을 관리하게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방어사를 겸하면서 부치(府治)는 백악산(白岳山) 남방인 옛 임진현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1866년(고종 3) 일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부로 복구되었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단군으로 개칭되었다. 일제의 진위대(鎭衛隊) 해산으로 의병 투쟁이 강력하게 전개되었는데, 이 지방 출신인 김수민(金秀敏)은 1907년 의병을 일으켜 13도 총도독이 되었다. 그는 2,000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덕음동에 군량을 비축하면서 보부상을 모집, 정보대를 편성함으로써 적정을 정탐하게 하였다. 아울러 부호들의 양곡을 징발하여 군용에 충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군비를 강화하였다. 1907년 11월 17일 개성수비대를 습격하여 선전하였으며, 4월 16일에는 20∼30명으로 편성된 유격대로 구화장헌병분견소(九化場憲兵分遣所)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김수민은 장단 · 풍덕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더욱 효과적인 의병 투쟁을 위하여 1908년 차부(車夫)로 변장하여 서울로 들어가려다 체포되었고, 12월 17일 순국하였다.
그 뒤에도 강기동(姜基東), 서상렬(徐相烈), 연기우(延起雨), 김진묵(金溱默), 하상태(河相泰), 이능곤(李能坤), 유진부(柳振敷) 등의 의병장들이 장단 · 고랑포를 중심으로 계속 기의(起義)함으로써 구국 투쟁의 선봉 역할을 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진남면에서 500명, 장단면에서 700명이 참가한 만세운동이 3월 26일에 있었고, 이어 3월 29일 진서면 시위, 4월 1일 구산면사무소 습격, 4월 4일 장도면과 대남면 시위, 4월 8일 고랑포 시위 등이 전개되었다.
광복 이후 10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파주군과 이웃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 이후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게 되면서 북한령에 해당하는 장단면 · 군내면 일부와 진서면이 개성직할시에 편입되었고, 군내면 · 진동면 일부와 장도면 · 대강면 · 소남면 · 대남면 · 강상면은 개풍군의 영남면 · 영북면 · 북면과 통합되어 황해북도 장풍군이 되었다. 소남면 북서부 끝 일부는 황해북도 금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52년 12월에는 진서면과 개풍군 봉동면 · 상도면 · 중면 · 흥교면 · 임한면 지역에 판문군이 신설되었다. 판문군은 2002년 11월 폐지되었다가 2020년 개성시 판문구역으로 부활하였다.
대한민국령에 속한 장단면 · 군내면 · 진동면과 진서면 일부는 파주시에 편입되었고, 장남면은 지명 그대로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장도면 · 대강면 일부 땅은 연천군 백학면에 통합되었다.
호로고루(瓠蘆古壘)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 대지 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임진강이 국경 하천 역할을 한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문화 유적이다.
덕진산성(德津山城)은 파주시 군내면에 있는 산성으로, 2017년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고구려에 의해 축성된 후 통일신라시대에 개 · 보축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외성이 축조되는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축성 기술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왕릉으로는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신라 경순왕릉이 있다. 왕릉의 비석은 조선 영조 때 발견되었다. 황해북도 장풍군 대덕산리에는 고려 문종의 경릉(景陵)이, 개성시 판문구역에는 고려 숙종의 영릉(英陵)이, 개성시 장풍군 지릉리에는 고려 명종의 지릉(智陵)이 있다.
황해북도 장풍군 덕적리 용봉산에는 삼국시대의 고찰로 전하는 심복사(心腹寺)가 있다. 절 부근에는 고려 이후 명문의 묘소가 많이 있다. 개성시 용흥동에는 1349년(충정왕 1)에 창건된 화장사(華藏寺)가 있다. 화장사 부도는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부도탑 중 하나로, 고려 말기 지공대사의 사리탑으로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 장단도호부 불우조(佛宇條)에 의하면 군내에 극락사(極樂寺), 창화사(昌化寺), 영통사(靈通寺), 흥성사(興聖寺), 성등암(聖燈庵), 낙산사(洛山寺), 안적사(安積寺), 증각사(證覺寺) 등의 많은 절이 산재하여 있었다고 한다.
옛 교육기관으로는 군내면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한 장단향교가 있었다. 당시 향교의 학생은 부 · 목에 90명, 도호부에 70명, 군에 50명, 현에 30명이 등록할 수 있었는데, 본 군은 도호부였기 때문에 70명의 학생이 있었다. 현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읍내리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향교의 교육 기능이 약화되고 서원이 설립되었다. 이 지역에는 1650년(효종 1) 창건되고 1694년(숙종 20)에 사액(賜額)받은 임강서원(臨江書院)이 있었는데, 고려 중찬(中贊) 안유(安裕), 한산백(韓山伯) 이색(李穡), 좌찬성(左贊成) 김안국(金安國), 예조참판 김정국(金正國) 등을 배향하였다. 서울 근역에서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지방 사학의 명문으로 손꼽히던 곳이었으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다. 현재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군내면에 장단공립보통학교가 처음 설립되었다. 군내공립심상소학교와 군내공립국민학교를 거쳐 현재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에 있는 군내초등학교가 되었다. 그 뒤 각 면에 고랑포 · 구화 · 위천 · 진남 · 소남 · 장도 · 대강 · 진서 · 진동 · 대남 · 군내 · 장단동(長湍東) 등의 공립보통학교와 일본인들이 주로 취학한 고랑포 · 동장(東場) 공립심상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장단공립농업실수학교 1개교만 있었기 때문에 초등교육을 이수한 뒤에는 경제적인 사정에 따라 지리적으로 인접한 서울이나 개성으로 유학하였다.
임진강 · 사천 등의 하천 유역에 형성된 낮은 하안 평야에서는 벼농사가 행해지고, 구릉지대에서는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특히, 이 지역의 지명이 붙은 장단콩은 장단군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래종 콩으로, 이러한 이름이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의 일이다. 일제는 장단 지역에서 수집한 재래종 콩에서 ‘장단백목’이라는 장려 품종을 선발하였다. 콩의 색깔은 노랗고 껍질이 얇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최초의 보급 품종이 된 장단백목은 해방 이후에도 장려 품종으로 개발되었으나, 한국전쟁 후 사라졌었다. 장단 지역의 대부분이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민간인통제구역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이 지역 일대에 마을을 조성하고, 민간인이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통일촌 사업을 시행하면서부터 민통선 내 농지에서 콩을 재배하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 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의 하나로 파주시에서 장단콩 브랜드 육성 사업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콩 재배 면적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민통선 안 경작지는 군내면, 장단면, 진동면, 진서면 등 4개 면에 걸쳐 있으며, 민간인이 사는 마을은 세 곳이다. 최북단인 DMZ 안에 있는 대성동 마을과 1973년에 조성된 통일촌, 그리고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2001년에 조성된 해마루 마을이 있다. 3개 마을 중 가장 크고 콩 재배 농민이 많은 마을은 통일촌이다.
그 밖에 주요 농산물로 쌀, 콩 , 조, 밀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개성과 인접하여 인삼이 재배되고 있다. 가내 공업으로는 양잠업이 성하여 장단주(長湍紬)가 생산되었으며, 도자기, 대리석, 주물 등도 생산하였다.
교통은 경의선과 국도인 경의가도가 군의 남부를 통과하며, 지방도로가 연천∼장단, 개성∼장단, 장단∼삭녕 등 각 지방을 연결하고 있다. 특히, 장단은 경의선의 주요 역으로, 행정 · 교통 ·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역사가 소실된 후 폐역된 채로 남아 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에 있다.
임진강은 예로부터 주요 내륙 수로로 이용되어 주1이 발달하였다. 멀리 마식령산맥에서 발원하지만 주운이 편리한 곳은 고랑포부터였으며, 상고랑포 · 하고랑포 · 석포(石浦) · 수천포 · 석포(席浦) 등의 많은 하항이 발달하였다. 특히, 고랑포는 경기 북부 포구의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임진강을 통한 물자 교류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거치며 쇠락해 지금은 나루터의 흔적조차 없으나, 연천군 장남면 장남로에 연천고랑포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고랑포 일대의 역사와 당시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주요 관광지로는 임진강 주상절리가 유명하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지점에 임진강 하류를 따라 강변 협곡에 형성된 주상절리이다.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는 강안석벽이 병풍을 두른 듯 멀리 마전(麻田) · 적성(積城) 방면으로부터 장단에 이르기까지 20여 리나 계속된다고 하여 장단석벽(長湍石壁)으로 불렀으며, 그 아래 석벽은 소식(蘇軾)이 놀던 적벽과 흡사하다 하여 동파석벽(東坡石壁)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과거 장단군 동북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강서면(江西面)과 강북면(江北面)이 1930년 강상면(江上面)으로 병합되었다. 분단 이후 강상면은 개풍군의 일부 지역과 통합되어 장풍군 소속이 되었다.
강상면 구화리와 갈운리가 합쳐져 장풍군 구화리(九化里)가 되었는데, 구화는 굴바위가 있는 마을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구화리 전체 면적의 68%가 산림이며, 북쪽에 있는 원통산[427m]에서 산줄기가 뻗어 내려 남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점차 낮아진다. 남쪽으로 한강의 제2지류인 사미천이 흐르고, 중앙으로 지곳천이 흐르며, 그 연안에 넓지 않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문안저수지 · 신촌보 · 월동보 등의 저수지 건설로 관개 체계가 확립되었다.
덕적리와 솔랑리, 갈운리가 합쳐저 덕적리(德積里)가 되었다. 북부와 서부에는 삼송산[519m] · 원통산[427m] · 덕수산 등 아호비령산맥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남동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점차 낮아진다. 중앙으로 임진강의 지류인 신천이 흐르며, 신천의 상류에는 덕적저수지가 있다.
자하리와 마성리도 자하리(紫霞里)로 통합되었다. 자하는 기암괴석으로 된 깊은 골짜기에 늘 안개가 끼어 있다 하여 비롯된 지명이다. 이 지역은 전반적으로 해발 100~200m의 산들이 드문드문 솟아 있는 구릉지대로 되어 있다. 임진강의 지류인 자하천과 덕적천이 유입되어 있고, 이 하천 연안에 작은 벌들이 전개되어 있다.
과거 장단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진현내면(津縣內面)과 진북면(津北面)이 1930년 군내면(郡內面)으로 병합되었다. 분단 이후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파주시에 편입되어 백연(白蓮) · 조산(造山) · 정자(亭子) · 읍내(邑內) · 송산(松山) · 점원(點元) · 방목(芳木) 등 7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군내면에서 민간인이 거주하는 곳은 백연리 통일촌과 조산리 대성동뿐이다. 원래 이 지역은 북방한계선과 가까워 민간인이 거주하던 지역이 아니었으나, 1972년 민통선 북방 지역이 개발되고 제대 장병들이 이곳에서 영농을 시작하면서 마을로 조성되었다. 대성동은 자유의 마을이라고도 불리며,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민간인 거주 지역이 되었다.
과거 장단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강남면(江南面)과 대위면(大位面)이 대강면(大江面)으로 병합되었다. 북한령의 대강면은 장풍군이 신설되면서 포함되었고, 대한민국 영토에 속한 대강면은 연천군 백학면에 통합되었다.
북한의 대강면은 우근리와 독정리가 국화리(國化里)로 통합되었으며, 마을에 국화꽃이 많이 피어 유래된 지명이다. 비지산[200m] 등의 낮은 야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작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북쪽과 동쪽 경계에는 한강의 지류인 사미천이 흐르고, 이 강으로 흘러드는 국화천 상류에는 토현저수지가 있다.
나부리와 춘포리가 나부리(羅浮里)로 통합되었는데, 벌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임강리(臨江里)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사미천 강가에 임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판부리와 청정리, 독정리가 합쳐져 사암리가 되었다.
과거 장단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되었으며, 1930년 변경 없이 그대로 대남면(大南面)으로 되었다. 분단 이후 대남면은 장풍군에 포함되었으며, 가곡리와 성곡리, 위천리가 합쳐져 가곡리(佳谷里)가 되었다. 원통산[427m]과 도고산이 솟아 있는 동북부와 서부가 비교적 높다. 리의 가운데로는 사미천의 지류인 지곳천이 흐른다.
석촌리와 성곡리, 위천리 일부가 합쳐져 석촌리(石村里)가 되었다. 북부와 서부 경계 지역에 아호비령산맥의 대저산[592m]을 비롯한 높고 낮은 산들이 솟아 있으며, 서부와 남부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북쪽 경계 지역에 황계치고개[185m]가, 남쪽 경계 지역에 배치고개가, 남서쪽 경계 지역에 양합고개가 있다.
장좌리와 위천리 일부가 합쳐져 장좌리(長佐里)가 되었다. 긴 고개가 있다 하여 장재라 하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장좌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장좌천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좌라 했다는 설도 있다. 이 지역은 아호비령산맥에 놓여 있어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는데, 수룡산[716m]과 황계치고개가 있는 북부가 높고, 그 밖의 지역에는 야산들이 드문드문 솟아 있다. 하천망이 발달하여 영역 내로 임진강의 지류인 장좌천, 석간천, 상황천, 원산천, 장재천, 열은천 등 하천이 유입되어 있는데, 석간천과 상황천에는 소형 발전소가 건설되어 있고, 석간천 상류에는 장좌저수지가 건설되어 있다.
과거 장단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되었으며, 1930년 변경 없이 그대로 소남면(小南面)이 되었다. 분단 이후 장풍군에 포함되었다. 두곡리와 지금리를 합쳐 십탄리라 하였는데, 북우천에 10개의 여울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1967년에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세골리에 편입하였다.
과거 장단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고남면(古南面) · 장현내면(長縣內面) · 장서면(長西面)의 관송리 · 반정리가 1930년 장남면(長南面)으로 병합되었다. 남북 분단 이후 장남면은 지명 그대로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62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에 의거 연천군 백학면 원당출장소(元堂出張所)가 개설되었으며, 1989년 4월 면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4개의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전 지역이 민간인통제선 북방 지역으로, 취락은 원당리에 주로 결집되어 있다. 원당리는 임진강을 끼고 있는 강변 마을이다. 조선 초에 장단현을 다스리던 고을 원님의 관저(官邸)인 원당이 있었다 하여 원당리라 칭하였다.
과거 장단군의 남단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상도면(上道面) · 하도면(下道面) · 중서면(中西面)이 1930년 진남면으로 병합되었으며, 1934년 장단면으로 개칭되었다. 분단 이후 파주시로 편입되었으며, 노상(盧上) · 노하(盧下) · 거곡(巨谷) · 석곶(石串) · 강정(江井) 등 5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과거 장단군청의 소재지로, 한국전쟁 직전까지 실질적인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과거 장단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동도면(東道面) · 서도면(西道面) · 장북면(長北面)이 1930년 장도면(長道面)으로 병합되었다. 남북 분단 이후 분리되어 남한의 장도면 일부는 연천군 백학면에 통합되었으며, 북한의 장도면은 장풍군으로 통합되었다.
북한에서는 일부 행정구역의 변화가 있었는데, 고읍리와 상리가 합쳐져 고읍리(古邑里)가 되었다. 지형은 가장자리가 높고, 중부 지역으로 가면서 구릉성 평야로 되어 있다. 서부 지역에는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배룡산[390m]이, 남부에는 망해산[272m]이 솟아 있다.
사시리와 석주원리, 매현리가 합쳐져 사시리(沙是里)가 되었다. 이 지역은 구릉지대로 되어 있는데, 중심을 사천강의 지류인 판문천이 관류하고 있으며, 그 연안을 따라 벌이 전개되어 있다. 항동리와 오음리가 합쳐져 항동리(項洞里)가 되었다. 항동은 좁고 긴 골짜기로 들어가는 목에 위치해 있어 목골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다.
과거 장단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진동면 · 당서면의 초리 · 용산리가 1930년 진동면(津東面)으로 병합되었다. 남북 분단 이후 파주시에 편입되었으며, 진동면 이름 그대로 동파(東坡) · 용산(龍山) · 하포(下浦) · 서곡(瑞谷) · 초(哨) 등 5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하여 동파리에 실향민 마을인 해마루촌이 조성되어 일부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성을 활용한 DMZ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 장단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루어진 옛 장단군의 송남면(松南面)과 송서면(松西面)이 진서면(津西面)으로 병합되었다. 남북 분단 이후 진서면의 대부분은 북한령이 되었으며, 일부가 파주시에 편입되었다. 금릉(金陵) · 마장(馬場) · 어룡(魚龍) 등 3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군사보호구역으로서, 모든 지역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서쪽의 선적리에는 판문점 인근의 자유의 집이 위치하며, 이곳에서는 남북한 간의 연락 업무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