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판사 장해(張海)의 노비였으나 찬성 안사기(安師琦)에게 아부하면서 장해에게 무례하게 굴기도 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 제2차 침입 당시 적이 압록강을 건너와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이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시)로 남천(南遷)할 때, 낭장(郎將, 정6품)으로서 왕과 태후 등을 호위하여 임진강을 건너 수종하였다. 그 공로로 1363년(공민왕 12) 윤3월에 신축호종이등공신(辛丑扈從二等功臣)을 제수 받았다. 또한 1362년(공민왕 11) 낭장으로서 경성을 수복한 공로로 1363년(공민왕 12) 윤3월에 수복경성일등공신(收復京城一等功臣)에 서훈되었다.
장룡의 활동 사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낭장이라는 무관 직책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등공신과 일등공신을 제수 받은 것으로 보아 공민왕의 신변 보호에 큰 공로를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