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4년(우왕 10) 6월에 전판종부시사(前判宗簿寺事, 정3품)로서 명나라에 파견되어 세공(歲貢)으로 말 2,000필을 바쳤다.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와 외교 관계가 이루어지면서 세공으로 말이 제공되었는데, 이는 이전부터 있었던 원나라에 대한 말 공납의 연장 혹은 명나라의 북원(北元) 공략을 위한 전략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이었다.
또한 그 다음 해에는 밀직사(密直司) 안익(安翊)과 더불어 밀직부사(密直副使, 종2품)로서 명나라에 가서 명 태조의 생신을 축하하였다. 이 때 세공을 한꺼번에 바칠 것과 명나라가 직접 왜구를 칠 때를 대비하여 수로(水路)를 잘 아는 자를 미리 마련하라는 선유(宣諭)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1386년(우왕 12) 9월에는 밀직부사로서 명나라에서 가서 세공(歲貢)으로 수말 15필과 암말 35필을 바쳤다. 그 다음 해 9월에도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종2품)로서 명나라가 나하추[納哈出]의 항복을 받은 것을 경축하기 위하여 명나라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요동에서 길이 막혀 되돌아오고 말았다. 장방평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