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낭장 겸 병부원외랑(內侍郎將兼兵部員外郎, 정6품) 장보(莊甫)는 성격이 강직 정대하여 권세 있는 고관에게 아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1177년(명종 7) 정중부정권 때에 내시장군(內侍將軍) 정존실(鄭存實)의 교만함을 문책하였다. 이를 중방(重房)에서 듣고 장보가 장관을 모욕하였다고 하여 거제현령(巨濟縣令)으로 좌천시키려고 하였다. 장보는 추밀원(樞密院)으로 가서 추밀원사(樞密院使) 이광정(李光挺)과 부사(副使) 최충렬(崔忠烈) 등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광정의 분노를 사 먼 섬으로 유배되던 중 그들이 보낸 사람에 의하여 물에 빠져 죽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애석해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