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지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기해격주홍적2등공신에 책록된 공신.
이칭
  • 이칭달산(達山)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홍건적 제1차 침입
  • 본관순천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서운정|기해격주홍적이등공신|판서운관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안식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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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기해격주홍적2등공신에 책록된 공신.

개설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달산(達山). 밀직부사(密直副使) 장홍(張弘)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63년(공민왕 12) 11월에 1359년(공민왕 8) 홍건적(紅巾賊)의 제1차 침략을 물리친 공으로 서운정(書雲正)으로서 기해격주홍적이등공신(己亥擊走紅賊二等功臣)이 되었다.

1378년(우왕 4) 왜구(倭寇)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로서 정당문학(政堂文學) 권중화(權仲和)와 함께 북소(北蘇) 기달(箕達: 峽溪)에 가서 궁궐의 터를 보고 왔다. 이때의 천도는 북소조성도감(北蘇造成都監)까지 설치하여 진행되는 듯 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하고 중지되었다.

1382년(우왕 8) 2월에는 판서운관사로서 왕에게 글을 올려 경성(京城: 개성)에 괴변이 자주 일어나므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였다. 우왕은 그 글을 도당(都堂)으로 보냈으나 이인임(李仁任)이 불가하다고 고집하였으므로 그 문제가 중지된 적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천도 논의는 여러 번 있었지만, 대몽항쟁기 강화천도(江華遷都)를 제외하면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개경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들의 반대가 가장 큰 이유였다.

장보지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1392년(공양왕 4) 조선 건국 후 머리를 깎고 미달산(迷達山)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한국계항보(韓國系行譜)』

  • - 「고려 우왕대의 천도론과 정치세력」(이형우,『한국학보』113, 2003)

  • - 「홍건적과 왜구」(나종우,『한국사』20, 국사편찬위원회, 1994)

  • - 「홍건적의 침입에 관한 고찰」(김정의,『군사』17,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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