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때 새로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 중의 하나. 1829년(순조 29)효명세자(孝明世子:익종)가 중국 송대(宋代) 기성절(基聖節)에 쓰던 장생보연지악(長生寶宴之樂)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정재이다.
죽간자(竹竿子)가 무원(舞員)을 인도하여 출퇴장(出退場)하는 춤에는 「장생보연지무」를 비롯하여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제수창(帝壽昌)」·「최화무(催花舞)」의 네 가지가 전한다. 『국연정재창사초록(國讌呈才唱詞抄錄)』에 따르면, 그 창사는 1829년 예제(睿製), 1887년(고종 24) 가제(改製)로 되어 있다.
춤 이름은 1829년에는 「장생보연지무」, 1848년(헌종 14)에는 「장춘보연지무(長春寶宴之舞)」라고 고쳤다가, 1877년(고종 14)에 다시 「장생보연지무」로 바꾸어 현재에 이른다. 춤은 죽간자 2명, 선모(仙母) 1명, 협무(挾舞) 4명으로 구성된다.
죽간자가 나아가 선구호(先口號)를 하고 원무(元舞) 5명이 나가고 선모가 좀더 앞으로 나가 치어(致語)를 한다. 선모가 원래의 대열에 돌아와 수악절(隨樂節)로 미전사(尾前詞)·미후사(尾後詞)를 창한다. 이어서 본격적인 무작으로 아홉 가지 다양한 춤을 추고 난 뒤, 죽간자가 나와 후구호(後口號)를 한 다음 죽간자와 원무가 물러나면 춤이 끝난다.
이 춤은 제1변(第一變)에서 제9변까지 상대무(相對舞)·수수무(垂手舞)·상배무(相背舞)·산작화무(散作花舞)·수수무·오방무(五方舞)·염수무(斂手舞)·사선무(四仙舞) 등 가장 변화가 많은 춤 중의 하나이다.
특히, 「보허자(步虛子)」 가락을 따라 부르는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는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그 가사의 번역문과 원문은 다음과 같다.
전단(前段)
바다에 뜨는 해가 먼저 붉다.
붉은 깁 옥(玉)토끼
상서로운 기운은 어리엇는데,
하늘에 아름다운 것을 이어 천악(天樂)을 아뢰다.
금봉(金鳳)과 은아(銀鵞)가 하도 총총한데,
향기로운 난초, 춤은 돌라 물결같고,
봄비처럼 가는 버들 아으 담담(澹澹)한 바람.
(天門海日先紅 絳紗玉斧 瑞氣怡融 承天嘉 奏天樂
金鳳銀鵝一叢叢 揚蘭茝 舞廻波 細細柳 澹澹風)
후단(後段)
구중(九重) 둥궐 봄빛은 짙은데, 번도연(蟠桃宴) 잔치런가
깁소매 잎잎이 춤 한바탕이로고
두번 절하고 세번 원하옵느니
첫째는 성수무강
둘째는 조야(朝野)가 맑게 평안하고
셋째는 천악(天樂)을 고로하고,
세세연년이 잔 드리과저
세세연년이 잔 드리과저.
(九重春色蟠桃宴 羅衫葉葉舞一遍
再拜陳三願 一願聖壽無疆
二願朝野淸晏 九如頌 歲歲年年 此盃獻)
전단은 「보허자」 초장 가락에 얹어 부르고, 후단은 「보허자」 2장 가락에 맞추는데, 노래는 대금가락을 따라 부른다. 음악은 팔천춘추지곡(八千春秋之曲) 또는 장생보연지악이라 하였지만 실제 연주되는 곡은 「보허자」이므로, 이 춤에는 「보허자」와 「향당교주 鄕唐交奏」 2곡이 사용되었다. 1982년 국립국악원 주최로 국립극장에서 재연되었다. →당악정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