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바위마을에 5기와 원동마을에 9기 등 14기가 분포되어 있었다. 이 고인돌들은 영산강 다목적댐 건설에 따른 공사의 일환으로 세워진 장성댐에 수몰됨으로써 1975년 8월 15일에서 9월 5일 사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굄돌(받침돌, 支石)이 있는 바둑판식[碁盤式]은 2기뿐이고, 나머지는 뚜껑식[蓋石式]이다. 고인돌 14기 중 9기에만 무덤방[石室]이 있고, 나머지 5기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무덤방이 있는 것 중에서 덮개돌[上石]이 있는 것 5기, 덮개돌 없이 주변에서 발견된 것이 4기이다. 굄돌이 있는 고인돌에서는 무덤방이 나타나지 않았다.
무덤방들의 종류는 판자돌로 짜맞춘 돌널형[石棺形], 돌로 쌓은 돌덧널형[石槨形]이 있었다. 돌널형이 7기이고 돌덧널형과 돌돌림형은 각각 1기씩만 확인되었다.
돌널형들은 판자돌을 이용해 긴 벽쪽은 2, 3매씩, 짧은 벽쪽은 1매씩으로 대개 ㅍ자형이다. 크기는 덮개돌이 있는 것이 1.6∼1.78m의 길이로 크나, 없는 것은 1.2m 정도로 작은 규모이다. 이와 같이 같은 지역에서 크기가 다른 것은 묻기 방법[葬法]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펴묻기[伸展葬]와 함께 굽혀 묻기[屈葬]와 옮겨 묻기[洗骨葬, 二次葬]도 성행한 증거로 보인다.
무덤방 주위에는 일정한 구역에 돌을 깔아 묘역시설을 하였다. 또 1기에서는 무덤방을 쓰기 전에 자갈과 모래로 기초다짐해 일종의 배수시설을 한 것도 있다. 출토유물은 1점도 없으며, 이는 다른 지역과는 매우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덕재리 고인돌의 특징으로는 돌널형 무덤방의 성행, 출토유물이 1점도 없는 점, 배수시설을 한 점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