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 (𨥭)

유교
인물
조선후기 공조정랑, 세자익위사위수, 이인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명세(鳴世)
소매당(訴梅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22년(광해군 14)
사망 연도
1705년(숙종 31)
본관
인동(仁同)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공조정랑|세자익위사위수|이인찰방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공조정랑, 세자익위사위수, 이인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명세(鳴世), 호는 소매당(訴梅堂). 아버지는 이조판서 장응일(張應一)이며, 어머니는 야로송씨(冶爐宋氏)로 부사 송광정(宋光廷)의 딸이다. 할아버지인 장현광(張顯光)에게 학문을 이어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671년에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를 제수받았다. 그 뒤 효종과 숙종 양조에서 경안찰방(慶安察訪) · 고령현감 · 이인찰방(利仁察訪) · 군자감판관 · 공조정랑 · 경흥창주부 · 세자익위사위수(世子翊衛司衛率) 등을 역임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인정(仁政)을 베풀고 공평, 청렴하였기 때문에, 붕당이 극심하던 당시의 정계상황에서도 한 번도 옥사에 휘말리지 않았다. 특히 이인찰방으로 있을 때에는 각 역전(驛田)이 모두 피폐하여 그 곳 주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그 사정을 조정에 진정하여 세금을 면제받도록 하여서 그들의 생업을 진작시킨 일도 있었다.

그 밖에도 병자호란 때의 의사 채무(蔡楙)를 소암사(嘯巖祠), 이사룡(李士龍)을 옥천사(玉川祠)에 각각 봉향하였으며, 그들의 애국충절을 기려 널리 후세에게 본받도록 하여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는 데 힘썼다. 호조참의로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소매당유집(訴梅堂遺集)』 1권이 있다.

참고문헌

『소매당유집(訴梅堂遺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