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 청산학교를 설립하고, 조선독립청년단과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14년 평양에서 숭실학교(崇實學校)와 신학교(神學校)의 재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조선독립청년단(朝鮮獨立靑年團)을 조직하고, 기관지 『청년단지(靑年團誌)』를 발행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14년 9월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박용만(朴容萬)과 항일투쟁의 방안을 협의하였다. 1915년 4월 귀국한 뒤 서광조(徐光朝)·강석봉(姜錫奉) 등과 함께 평양에서 조선국민회(朝鮮國民會)의 조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17년 3월 비로소 평양 이보식(李輔植)의 집에서 배민수(裵敏洙)·백세빈(白世彬) 등과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같은 해 6월 조선국민회 회원 배민수·노덕순(盧德淳) 등이 집게손가락을 잘라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쓰는 등 결연한 각오로 활동을 벌였고, 기관지 『국민보(國民報)』를 간행, 배포하였다.
또한, 중국무관학교(中國武官學校)에 입교할 학생을 선발하여 파견하는 등의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18년 2월 9일 일본경찰에 붙잡혀 잔혹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90)
- 『한국독립운동사』2(국사편찬위원회, 1973)
- 『독립운동사』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매일신보(每日申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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