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눌재(訥齋)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규정(司憲糾正)이 되었고, 이어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가 되었다.
1320년(충숙왕 7) 당시 상왕이던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를 입어 티베트[吐蕃]으로 귀양가게 되었는데, 이 때 반전(盤纏: 旅費 따위를 말함.)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갔다.
1327년 충숙왕이 참소를 입어 원나라에 5년 동안 억류되어 있었을 때 시종한 공로로 이등공신에 올랐으며 이어 나주목사를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가 되었다. 1331년(충혜왕 즉위년) 상왕인 충숙왕의 명으로 원나라에 태의(太醫)를 청하러 간 일이 있다.
그 뒤 밀직제학에 임명되고, 아울러 첨의참리 평양윤(僉議參理平壤尹)을 받았으며, 영산군(永山君)에 봉해졌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전민추쇄도감(田民推刷都監)이 설치되면서 제조(提調)에 임명되었고,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국정에 참의(參議)하였다.
다음해 참리(參理)가 되었고, 그 뒤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다. 1348년(충목왕 4) 경사도감(經史都監)의 제조와 이학도감판사(吏學都監判事)를 겸임하였다.
1352년 서연관(書筵官)에 임명되었다. 특히, 예학(禮學)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 공민왕의 명을 받아 종묘(宗廟)의 예악(禮樂)과 기복(器服)을 수정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현(文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