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능선전투는 전선이 교착되었던 1952년에 중부전선의 금화(현 김화)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15군과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빼앗기 위한 공방전을 벌인 전투이다. 작전기간은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42일간이었며, 교전지역은 금화 북방 7km 지점에 위치한 저격능선이었다.
이 저격능선은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성산에서 우단의 금화지역으로 향하여 뻗어 내린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돌출능선으로, 해발고도는 580m 정도이고, 능선의 크기는 1㎢ 정도의 장방형 능선이다.
미 제8군은 공산군의 공세에 대응한 제한된 공격작전을 계획하게 되었고, 이 작전의 일환으로 국군 제2사단이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측 전초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게 되었다. 미 제9군단의 작전통제 하에 실시된 이 공격에서 국군 제2사단은 첫날 공격에 성공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하였다. 그러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바로 그 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여 끈질기게 대항함으로써 장장 6주 동안에 걸친 공방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최초로 공격에 나선 국군 제2사단 제32연대 제3대대는 10월 14일 05:00에 공격을 개시하여, 5만 발에 가까운 포병의 화력지원을 받아 가며 목표를 탈취하였다. 그러나 이 대대는 중공군 제15군 예하 제45사단 제133연대의 역습을 감당하지 못하여 고지를 점령한 지 다섯 시간 만에 저격능선을 빼앗기고 물러서게 되었다. 다음날 두 번째 공격의 임무를 띤 국군 제17연대 제2대대는 주간공격을 감행하여 목표를 탈취한 후, 이 병력을 증강하고 밀집방어를 시도하였다. 그러다가 이 대대 역시 중공군의 야간 역습에 밀려 다시 철수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개된 접전이 하루도 빠짐없이 연속되어, 10월 25일까지 거의 같은 양상의 공방전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때 국군 제2사단은 미 제9군단의 작전지시에 따라 10월 25일부로 삼각고지의 미군 작전지역을 추가로 인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반격이 끈질기게 이어져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1주일 동안에 세 차례나 A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또다시 되풀이되다가, 18일을 고비로 하여 이 고지를 국군이 완전히 확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중공군의 공격 빈도가 점차 줄어들더니 11월 24일을 기하여 이들이 공격을 중지하고 방어태세를 취함으로써 저격능선전투를 종결짓게 되었다.
중공군은 빼앗긴 고지를 찾으려고 계속 공격해왔으나 한국군은 이 능선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끝까지 지켜냈으며, 2개 연대의 병력을 잃은 중공군은 오성산 북쪽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도 1개 연대 병력의 사상자를 내어, 이 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전쟁사상 2대격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하여 금화∼금성간의 도로망확보와 군사분계선 설정시 유리한 지형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전투가 끝난 후, 중공군측에서는 저격능선전투와 삼각고지 전투를 합하여 ‘상감령전역’이라는 명칭으로 격전기록을 남겼고, 국군측에서는 저격능선전투와 백마고지 전투를 치른 장소를 가리켜 6·25전쟁의 2대 격전지로 평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