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2월 26일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를 중심으로 대구농업학교와 대구상업학교 학생들이 모여 조직하였다.
본래는 신우동맹(新友同盟)이라 하여 1927년 11월 15일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창립되었다가 그 해 12월 27일 혁우동맹(革友同盟)으로 개편되었다. 그 뒤 1928년 2월 26일 적우동맹으로 개편되었다가 그 해 4월 30일 일우동맹(一友同盟)으로 개편, 발전되었다.
창립회원은 장적우(張赤宇)·윤장혁(尹章赫)·장종환(張鍾煥)·정수광(鄭壽光)·문철수(文鐵洙)·손익기(孫益基)·권태호(權泰鎬)·김낙형(金洛衡)·백대윤(白大潤)·조은석(趙銀石)·상무상(尙戊祥)·이월봉(李月峰)·정복흥(鄭復興)·이봉재(李鳳在)·박득룡(朴得龍)·장원수(張元壽)·김봉구(金鳳九)·장은석(張銀石)·한상훈(韓相勳)·황보선(皇甫善)·이기대(李起大) 등 20여 명에 달한다.
당주(堂主)는 장적우, 책임비서에 윤장혁이 선임되었으며, 회원을 2개 그룹으로 분류,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중앙조직으로는 비서·재무(재정)·선전·조직·정치·문화·조사·출판부의 8개 부서를 설치, 운영하였다. 조직 목적은 식민지 노예교육을 반대하고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데 있었다.
1928년 4월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에 대한 퇴학 처분에 대하여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전교적으로 동맹 휴학을 실시하도록 권유, 지도하였다. 좌파적 경향이 농후하였으며, 비밀누설 방지와 내부조직의 잦은 변경으로 개편이 거듭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