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팔곡 ()

고전시가
작품
1664년(현종 5)이휘일(李徽逸)이 지은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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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64년(현종 5)이휘일(李徽逸)이 지은 시조.
구성 및 형식

국문필사본. 작자가 45세 때 지은 이 작품은 농촌의 풍경과 농민의 노고를 소재로 하여 8곡의 단가(短歌), 곧 평시조 8수가 연첩(連疊)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서전가팔곡후(書田家八曲後)」에, “나는 농사 짓는 사람은 아니나, 전원에 오래 있어 농사일을 익히 알므로 본 것을 노래에 나타낸다. 비록 그 성향(聲響)의 느리고 빠름이 절주(節奏)와 격조(格調)에 다 맞지는 않지만, 마을의 음탕하고 태만한 소리에 비하면 나을 것이다. 그래서 곁에 있는 아이들로 하여금 익혀 노래하게 하고 수시로 들으며 스스로 즐기려 한다(存齋集 권4).”라고 하여, 이 시조의 저작동기를 밝히고 있다.

현황

이 시조는 본래 『존재집』에 수록되지 않은 채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1960년김사엽(金思燁)에 의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되었다. 이후 1988년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영인본으로 낸 『존재집』에 실리게 되었다.

내용 및 평가

시조의 내용을 곡별로 살펴보면, 첫 곡은 서문격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나타내고, 두 번째 곡에서 다섯 번째 곡까지는 춘(春)·하(夏)·추(秋)·동(冬) 사시에 걸쳐 농민이 해야 할 농사일의 노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 다음 여섯 번째 곡에서 여덟 번째 곡까지는 하루를 새벽·낮·저녁으로 나누어 일하는 즐거움을 구성지게 노래하였다.

이상과 같이 구성된 「전가팔곡」의 시조는 농가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잘 대변하고 있어서, 마치 『시경(詩經)』의 빈풍(豳風) 칠월장(七月章)을 축소해 놓은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한, 한자투성이로 된 재래의 고시조와는 달리 순수한 우리말로 적은 점이 특징이다.

첫 곡의 “우국성심(憂國誠心)은 연풍(年豊)을 원하노라”와 세 번째 곡의 “입립신고(粒粒辛苦 : 곡식 한 알 한 알에 농부의 고생이 스며 있음.) 어늬 분이 알아실고”에 나타난 정도가 한자어로 적힌 것의 전부이다.

참고문헌

『존재집(存齋集)』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과 전가팔곡(田家八曲)」(김사엽, 『영서고병간박사 송수기념논총』, 경북대학교,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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