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신분은 분명하지 않으나, 상호군(上護軍, 정3품)·밀직(密直)·첨의참리(僉議參里)·찬성사(贊成事, 정2품) 등의 문·무관직을 역임했던 것으로 보아 국왕의 측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338년(충숙왕 복위 7) 7월에 원나라에서 실리미(失里米)를 보내어 황후 책립의 조서를 반포하고, 환자(宦者)·동녀(童女)·말을 요구하였다. 실리미는 금교역(金郊驛)에 이르러 왕이 백주(白州) 등암사(藤巖寺)에 있다는 말을 듣고 성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재상들이 상호군 전사의를 보내어 양고기와 술을 접대하였다. 하지만 실리미는 그것을 받지 않고 왕이 맞이하지 않으면 성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여 설득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
1339년(충숙왕 복위 5) 8월에 조적(曹頔)이 심왕 왕고(瀋王 王暠)를 위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일원으로 참여하여 충혜왕의 배척을 받았다. 하지만 1344년(충목왕 즉위년) 5월에 밀직으로서 원나라에 가서 책명(冊命)을 사례하고 돌아왔고, 1345년(충목왕 원년) 4월에는 찬성사로 진급하는 것으로 보아 정계에 복귀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