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동호(東浩)·동배(東培)·세호(世浩), 호는 화서(花西). 경상북도 울진 출신.
1906년부터 1908년에 걸쳐 경상북도에서 대표적인 평민의병장으로 활약하던 신돌석(申乭石)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분진(分陣)의 선봉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09년 무렵 영릉(寧陵)에서 의거를 일으켜 총선봉장으로 일본군에 대한 항전을 전개하였다.
1916년 안동에서 중군장으로 활약하면서 일본군 다수를 총살시켰고 1919년 3·1운동 때 총참모로 항일투쟁을 펼쳤으며, 그 뒤에도 군자금 8만원을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망명을 계획하던 중 원산에서 붙잡힌 뒤 법정에서 9년7개월형을 선고받고 함흥감옥에서 복역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