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자성 출신. 3·1운동이 일어난 후 부친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경 만주 통화현(通化縣)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소대장으로 활동하던 강병선(康炳善)의 권유를 받아 동단에 참여하여 통신원으로 1년간 활동하였다.
1922년 2월 경 중대장 백광운(白狂雲) 등 5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폈다. 군자금 모집과정에서 평안남도 강계군(江界郡) 문옥면(文玉面)에서 일본 경찰 67명과 교전하는 격전을 치뤘다.
그 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29년 6월 27일 평양 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1929년 7월 27일 평양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