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교환기는 상호간에 정보의 교환을 신속,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기통신기기의 가장 필수적인 장치이다. 1877년에 처음 실용화된 교환기는 수동식이었으나, 1892년 스트로저 자동교환기가 등장하며 전화 보급이 시작되었다. 수동식 교환기는 1896년에 도입되었고, 자동식 교환기는 1935년에 처음 설치되었다. 1940년대에는 트랜지스터와 IC의 도입으로 자동교환기 기술이 발전했다. 1958년에 전자교환기가 컴퓨터와 결합하면서 데이터통신 시대가 개막되었다. 1984년에는 한국형 시분할전자교환기(TDX-1)가 개발되어 국내 통신망의 현대화와 확장을 이끌었다.
1876년 전화가 발명된 다음해인 1877년 미국의 보스턴에서 처음으로 실용화되었다. 이때의 교환기는 가입자수도 적고 운용기술도 유치하였던 수동식 교환기였으나, 1889년 미국의 스트로저가 자동교환기에 대한 발명특허를 얻고 이를 개량하여 1892년에 처음으로 스트로저 자동교환기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전화가 비약적으로 보급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단단(step by step)방식의 스트로저 자동교환기도 구조상 접점수가 제한되어 있어 대용량의 교환을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었다. 1920년에는 이런 결점을 보완한 새로운 형태의 크로스바 자동교환기가 스웨덴에서 고안되는 등 스트로저 자동교환기의 결점이 개선된 수종의 자동교환기들이 등장하였다.
1940년대 들어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자동교환기도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IC의 개발로 자동교환기의 두뇌 부분인 계전기 대신에 이들 트랜지스터와 IC가 교환기에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컴퓨터가 교환기에 채용되었다. 즉, 1958년에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축적프로그램방식의 전자교환기를 발명함으로써 교환기에 컴퓨터가 도입되었다. 컴퓨터와 교환기의 결합은 반도체와 디지털기술의 진보 덕분에 가능하였으며, 이는 또한 데이터통신의 등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데이터통신이 보편화되고 교환기술과 전송기술에 있어 디지털화는 종래의 통신과는 양상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종합통신인 정보통신의 급속한 보급을 가져왔다. 정보통신이 고도화되어감에 따라 정보화사회라는, 산업사회와는 뚜렷하게 획이 그어지는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였고, 이와 함께 통신서비스의 욕구는 더욱 다양화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더욱 진보된 전전자교환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1) 수동식
우리 나라에서는 1896년 대한제국의 궁내부용 전화가 개설되면서 도입된 스웨덴의 엘엠 · 에릭슨사의 자석식 단식교환기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교환기는 회선을 손으로 접속하는 회선교환방식에 의한 자석발전기를 사용하는 수동식으로 100회선 용량이었다. 1902년 3월 서울∼인천 간에 공중용 시외전화가 개통되고, 이어 한성전화소(1902. 6. 6. )와 인천전화소(1903. 2. 17. )에서 시내 교환업무가 개시되었는데,
이 때는 10회선과 50회선 용량의 교환기가 사용되었다. 공전식 전화기는 1908년 경성우편국(지금의 서울중앙우체국)의 자석식 단식교환기의 수용용량이 한계에 이르게 되어 도입되었다. 이 교환기도 회선교환방식의 수동식이기는 하였으나 교환국에 2차 전지를 비치하여 가입자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전식이었다. 이 공전식 교환기는 1980년대 들어 전자교환기에 의한 시설의 대량공급에 밀려 폐지(1983.12.22.)될 때까지 주로 읍면단위의 소규모 가입자지역에서 사용되었다.
(2) 자동식
1935년 3월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로 나진우편국에 자동교환기가 설치되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경성중앙전화국에 역시 자동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우리 나라도 비로소 자동교환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들 스트로저 기계식 교환기는 교환작업을 기계가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축적교환방식에 의한 단단방식이었다. 이때 나진에 설치된 교환기는 서독 지멘스사(Siemens社)의 스트로저 F형이었고 경성중앙전화국은 일본 NEC사의 스트로저 A형이었는데 그 뒤로 반도 북쪽에는 지멘스식이, 남쪽에는 NEC식이 설치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스트로저 교환방식은 이후에도 우리 나라의 주요 교환방식으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1960년 8월 용산전화국에 EMD교환기가 설치되어 주로 도시지역에서 사용되었다.
1976년 9월 설치된 전자통신개발추진위원회에서는 전자교환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결정에 의하여 1979년 12월 영동전화국과 당산전화국에 M10CN 전자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우리 나라도 시대적 요청인 전자교환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교환기는 축적프로그램교환을 채용한 반전자방식이었으나, 첨단기술의 발달에 따라 반전자방식(컨트롤회로나 스위치회로 중의 하나는 아날로그 공간분할)에서 전전자방식(디지털시분할)으로 발전하면서 우리 나라에는 M10CN(벨기에 BTM사 반전자), NO. 1A(미국 AT&T 반전자), NO. 4(미국 AT&T 전전자), AXE-10(스웨덴 에릭슨 전전자) 등의 여러 기종이 도입되었다. 전자교환기의 도입으로 1970년대 이후 계속된 전화 적체를 해소할 수 있는 대량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1987년에는 1가구 1전화의 시대를 실현하게 되었다.
1957년 자석식 교환기가 개발된 것을 시작으로 1964년에는 체신1 · 2호(미국의 Stromberg Carlson형), 체신3 · 4호(일본의 NEC형) 등의 공전식 전화기가 국내에서 개발되었다. 공전식 교환기의 개발에 앞서 1959년에는 스트로저식 자동교환기의 부품제조에 성공하고, 1962년 12월에는 서울중앙전화국에 300회선 용량의 스트로저 자동교환기가 국내 기술에 의하여 설치되었다.
또한 1965년에는 EMD 교환기가 생산공급되기 시작하였으며, 1968년에는 EMD 사설교환기가 처음으로 해외로 수출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전화 적체를 해소하고 국내산업의 보호측면에서 당시 도입이 거론되고 있던 전자교환기의 국내 개발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선진국들의 전자교환기술은 공간분할방식이 대량보급단계에 있었으며, 시분할방식은 실용화단계에 있었다.
시분할전자교환기는 통신 · 반도체 · 컴퓨터 등을 총망라한 첨단기술의 집합체로서 관련사업에 파급효과가 막대한 교환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환과 전송의 구분이 없어진 시분할교환기술은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의 기초이며 현대기술의 총아인 컴퓨터와 통신기술, 그리고 고집적반도체기술이 통합되어 미래의 정보화사회를 실현하는 핵심기술로서 모든 연구단체들에게는 절실한 과제였다. 이러한 시분할교환기를 국내에서 개발하기 위하여 전자통신개발추진위훤회 주관하에 당시 한국전기통신연구소(지금의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1년 10월 경제개발5개년계획기간(1982∼1986)중에 240억 원을 투입하여 시분할교환기의 국내개발을 적극 추진하도록 하였다.
한국형시분할전자교환기(뒤에 Time Division Exchange, TDX)의 개발에는 연구소 · 관련업체 · 전기통신사업자 및 주관청(主管廳)들이 협력하여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지 약 3년 만인 1984년 4월 25일 시범인증기를 개통하고 1986년 3월 14일 상용화되었다. TDX-1의 국내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PCM방식에 대한 교환기술의 축적은 물론 국내 기술에 의하여 국내 통신망의 확장과 시설 현대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해외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