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절풍(折風)은 삼국시대에 착용한 고깔 즉 삼각형 모양의 모자다. 절풍이란 명칭은 고구려 문헌에서 발견되었지만 고구려 벽화에 표현된 절풍과 동일한 모양의 유물이 신라나 백제 그리고 가야에서 모두 출토되어 절풍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착용하였던 모자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일반인까지 광범위하게 착용하게 하면서 새깃 장식의 유무, 금은 장식 및 고급 직물 등의 차별화를 통해 신분을 드러냈다. 신라와 백제는 화려한 금속제 절풍형 모자에서 상위 신분이 착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문헌 기록의 부재로 착용 양상은 명확하지 않다.
정의
삼국시대에, 착용한 고깔 모양의 모자.
형태
변천
백제의 절풍형 모자는 기본 형태는 동일하지만 세부 장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신라나 고구려의 절풍은 앞부분에 사각형의 장식판을 부착하고 모자의 본체와 장식판 사이에 새깃을 끼워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백제는 출토 유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모자의 전면, 후면, 측면에 모두 장식을 부착하며 이때 양쪽 측면 장식이 새의 날개 모양을 이룬다. 그리고 일부는 위쪽 부분에 수발이 있는 대롱 장식을 가하기도 한다.
고구려와 달리 절풍에 대한 기록이 없는 신라와 백제의 경우에는 시대 흐름에 따른 절풍형 모자의 변화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6세기 후반에 이르면 백제, 신라 모두 더 이상의 금속제 모자가 출토되지 않는다. 그리고 백제의 경우에는 철제 역삼각형의 관모 테와 은제 관 장식만 출토되고 있고, 신라의 경우에는 유물은 없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특정 관직의 관모로 문양이 있는 비단이 사용된 ‘금관(錦冠)’, 소재는 명확하지 않지만 붉은 색상의 ‘비관(緋冠)’ 등이 보인다. 이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고구려에서 6세기에 자색의 라직물이 사용된 소골이 출현한 것과 같이 신라와 백제에서도 절풍형 모자에 직물이 사용되면서 직물의 종류와 모자 장식의 소재에 따라 신분을 드러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지(三國志)』
- 『후한서(後漢書)』
- 『남사(南史)』
- 『북사(北史)』
단행본
- 김문자, 『한국복식사개론』(교문사, 2015)
- 『百濟의 冠』(국립공주박물관, 2011)
- 『신라황금』(국립경주박물관, 2001)
- 김원룡 편, 『(한국미술전집) 벽화』 4(동화출판공사, 1974)
논문
- 강순제·전형실, 「고깔형 관모에 관한 연구」(『복식』 52-1, 한국복식학회, 2002)
- 권준희, 「고구려와 신라의 절풍(折風)형 관모」(『韓服文化』 6-3, 한복문화학학회, 2003)
- 함순섭, 「考古資料를 통해 본 우리나라 古代의 冠」(『三國時代 裝身具와 社會相』, 제3회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복천분관 학술발표대회, 199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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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절풍은 고구려 관련 기록에 보이는 모자의 명칭이다. 백제, 신라 및 가야 고분에서 모두 출토되고 있는 절풍형태의 모자도 고구려와 동일하게 절풍으로 칭해졌을지는 알 수 없다. 이에 고구려 이외 지역에서 출토된 모자 유물은 절풍과 같은 삼각형 모양임에 근거하여 변형모(弁形帽)나 절풍형 모자, 혹은 고고학 일부에서는 모관(帽冠)이라 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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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무덤 안의 천장이나 벽면에 그려 놓은 벽화.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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