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西道)에서 민간인이 세운 최초의 사립학교인 동시에 남녀공학을 실시한 최초의 소학교이기도 하다.
안창호는 한말의 침체된 국운 속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구국운동(救國運動)을 전개하였다. 그는 자아혁신과 자기개조를 통해서 민족혁신과 민족개조를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교육이 제일이라고 보아 고향에 점진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학교의 명칭은 점진적으로 공부와 수양을 계속하여 민족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안창호의 점진론을 나타내고 있다. 안창호가 지은 교가(校歌) 속에도 그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점진 점진 점진 기쁜 마음과
점진 점진 점진 기쁜 노래로
학과를 전문하되 낙심말고
하겠다 하세 우리 직무를 다.
이는 그가 평소에 강조하던 무실역행사상(務實力行思想)을 그대로 담은 것으로,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07년에는 대성학교를 설립하여 ‘점진’적으로 ‘대성’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점진학교는 구체적인 교육과정이나 교육실태 등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나, 개화기에 국력배양과 민족개조를 위하여 설립되어 민족운동의 중심세력을 형성한 뜻깊은 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