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선산(善山) 김씨 문충공(文忠公)파 종택으로 1800년경에 창건했다 하며, 안채ㆍ사랑채ㆍ중사랑ㆍ곳간ㆍ사당ㆍ대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문충공은 성종(成宗)때 형조판서를 역임한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인데 그는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불행을 당했고 어린 외아들은 여러 곳에 전전하였다. 겨우 6세손에 이르러서야 고령군에 정착해 효종 2년(1651)이래 대대로 살게 되었다. 1800년경에 이르러 지금의 집을 짓고 신원받은 문충공을 불천위묘에 모셨다.
안채는 정면 7칸 반 측면 단칸통[單間通]의 一자형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一자형 좌측부터 부엌, 2칸의 안방, 2칸 대청, 건넌방과 앞퇴, 그리고 반 칸의 골방이 달렸다. 뒷벽 밖 처마 아래로 수장 공간이 구조되었다.
자연석 주초에 모기둥[方柱]을 세웠으나 대청 가운데 기둥만 두리기둥[圓柱]이다. 가구(架構)는 삼량(三樑)인데, 대들보가 멋지게 휘었다. 사랑채는 제청(齊廳)이라고도 부른다. 정면 5칸, 측면 2칸 통, 안채 맞은편에 위치했고 1자형이다. 좌측부터 머릿방, 사랑방 2칸, 대청 2칸, 방과 대청 앞에 툇간이 있다.
홑처마 맞배지붕의 삼량집인데 상량대에 1812년의 기문(記文)이 묵서(墨書)되어 있다. 중사랑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위치하며 동향해서 집의 뒷면이 안마당에 면하였다. 돌아앉은 셈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통이다. 단칸방 둘이 각각 자리잡았고 나머지 공간은 마루를 깐 대청이다. 우진각지붕이며 현재는 시멘트기와를 이었다.
중사랑채 안마당 건너 맞은편에 곳간채가 있다. 정면 4칸, 측면 단칸통의 우진각지붕에 양기와를 이은 집이다. 가운데 두 칸 곳간, 우측에 방앗간, 좌측이 마구간, 뒤에 내측(內厠)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간 반통의 맞배기와지붕집이다. 앞퇴가 열린 평범한 구조다. 대문간채는 3칸의 솟을대문형이다. 시대에 걸맞은 보편적인 살림집이며 격식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