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무산계를 제정할 때 정9품 문산계만 종사랑(從仕郎)으로 정하고, 무산계는 정해지지 않았다. 무산계는 1436년(세종 18) 처음으로 진무부위(振武副尉)를 설치했다가 ≪경국대전≫에 효력부위(效力副尉)로 개칭되어 수록되었다.
정9품 문무관 처의 직명은 유인(孺人)이라고 하였다. 한편, 토관계는 1438년 전력도위(展力徒尉)를 신설했는데, 1466년(세조 12) 관제개혁 때 여력도위(厲力徒尉)로 개칭하였다. 그 뒤 ≪경국대전≫에서는 토관 문계의 계공랑(啓功郎)과 함께 토관계의 문무 양계로 정비되었다.
또한, 1444년(세종 26) 서반잡직계가 신설되었으나 9품계는 없었다. 그 뒤 ≪경국대전≫에 이르러 잡직계의 정9품 문계로는 복근랑(服勤郎), 무계로는 치력부위(致力副尉)가 설치되었다.
정9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전경(典經) · 정자 · 기사관 · 검열 · 학록 · 규장각대교 · 부봉사 · 세마 · 훈도 · 사용 · 수문장 등이 있다.
정9품관에게는 1438년에 정비된 녹과(祿科)에 의거하여 실직(實職)에 따라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모두 조미(糙米) 10석, 전미(田米) 1석, 황두(黃豆) 3석, 소맥 1석, 정포(正布) 3필, 저화 1장을 녹봉으로 지급하였다.
아울러 조선 초기에 과전 15결을 지급했으나 1466년 과전법이 혁파된 뒤에는 직전 10결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직전 지급도 1556년(명종 11) 완전히 폐지되자, 조선 후기 ≪속대전≫에는 매달 미 10두, 황두 5두를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한편, 1894년 7월 갑오경장으로 관제개혁이 이루어질 때 정9품 · 종9품은 9품으로 개칭되고, 품계는 종사랑으로 단일화되었다. 그리고 9품에서 8품까지를 판임관이라 하였다. 9품 주사에게는 15원의 월봉이 지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