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좌랑, 직강, 사예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형지(亨之). 정언복(鄭彦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관(鄭慣)이고, 아버지는 봉사 정광전(鄭光前)이며, 어머니는 흥양유씨(興陽柳氏)로 현령 유회(柳淮)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8년(인조 6)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성균관에 봉직, 이어서 제용감(濟用監)·광흥창(廣興倉)·내섬시(內贍寺)·사섬시(司贍寺)의 참봉·봉사·직장을 거쳐 1631년에 전적이 되었다.
1636년 공조좌랑에 봉직할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이별하고 강화에 들어갔다가 난이 끝난 뒤에 황해도사·직강·사예를 지냈으며, 1645년 병으로 죽었다. 천성이 관대하고 간묵(簡默)하여 희로(喜怒)를 잘 나타내지 않고 관직생활에 청근(淸謹)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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