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윤지(允之), 호는 미당(美堂)·초천(蕉泉). 아버지는 판관 정술인(鄭述仁)이다.
1810년(순조 10) 진사시에 합격하여 세마가 된 뒤, 담양부사 등 여러 주군(州郡)의 지방관을 거쳐 공조판서·지의금부사·지중추부사·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870년(고종 7) 정헌계(正憲階)에 올랐고, 1875년 숭정계(崇政階)에 올라 판의금부사에 제수되었다가 이 해에 죽었다.
관직에 있는 동안 한결같이 근면하였고, 백성을 자식과 같이 생각하며 구휼하는 데 힘썼다. 당시 사류들이 그의 청렴함을 추앙하였다. 글씨를 잘 써서 후학의 모범이 되었으며, 특히 산수화에 능하였다. 더욱이 고인장(古印章)에 대한 조예도 깊어 즐겨 수집하였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